[기자수첩]130년 역사 오명에도 '뒷짐 진' 이대 원로들

by유현욱 기자
2016.10.21 06:00:00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개교 이래 130년 역사상 총장 중도 퇴진이란 초유의 사태를 맞은 이화여대는 지난 80여 일간 아노미 상태였다. 평생교육단과대학 설립 추진으로 촉발된 총장과 학생 간 갈등과 대립은 파국으로 치달았고 결국 총장의 불명예 퇴진이란 오점을 남겼다. 자리에서 물러난 총장뿐 아니라 이화의 모든 구성원들도 상처를 입었다.

이 과정에서 이화의 ‘어른’들은 뒷짐진 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총장뿐 아니라 학생들도 고비마다 중재와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않았다. ‘비선 실세’ 의혹을 받는 최순실씨 딸의 각종 특혜 의혹 해소, 차기 총장 선출 등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쓴소리’ ‘입바른 소리’ 하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전임 총장이 후임 총장 일에 간섭하지 않는 전통이 있다” “그저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잘 마무리 됐으면 한다”는 등 한때 이화를 대표했던 이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그저 남의 일 대하듯 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교수는 “어느 조직이나 원로(元老) 그룹이 꾸려져 조직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비난을 감수하고 쓴소리를 하는데 이런 ‘어른’이 보이지 않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대는 지금 학생 한 명을 둘러싼 문제로 벌집을 쑤셔놓은 듯 아수라장이다. 정권과 결탁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순실대’라는 조롱까지 받고 있다. 취임 일성으로 “서울대·연세대 다음이던 1976년 그때로 돌아가겠다”던 최경희 총장의 말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이 지경에 이른 비상시국에 “학내 구성원이 스스로 해결하길 지켜보겠다”는 식의 태도는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노마지지(老馬之智)란 말이 있다. 늙은 말의 지혜란 뜻이다. 연륜에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법이다.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다고 원로는 아니다. 걸맞은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비로소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지금의 갈등과 어려움은 이화공동체를 더 화합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믿음은 그때서야 실현될 수 있다.

이화의 어른들이라면 “지금이라도 전 총장들이 사태 수습에 나서야 할 때”라는 학교 구성원의 간절한 바람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