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사원없이 제품력으로만 승부하는 국내제약회사는?
by천승현 기자
2015.03.30 03:00:00
조호연 씨티씨바이오 회장 인터뷰
인체의약품 사업부 성과 확대..다국적제약사들과 수출 계약
필름형 비아그라 등 최초 개발..조루약 등 개량신약 선도
동물의약품도 미국시장 진출 임박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빠른 속도로 변하는 환경 탓에 어제만해도 블루오션이었던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바뀌곤 합니다. 한 분야에만 안주하면 언제든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어 항상 새로운 분야를 기웃거립니다.”
조호연 씨티씨바이오 회장(57)은 최근 서울 송파구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회사의 ‘도전 정신’을 연신 강조했다. 제약업계에서 씨티씨바이오(060590)는 매우 흥미로운 업체로 평가받는다. 지난 1993년 동물의약품 판매 업체로 시작해 국내 동물의약품 분야 점유율 1위를 성장했지만 최근에는 인체의약품으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굴지의 국내제약사들이 개발하지 못한 독특한 제품을 개발, 국내외 제약사들에 공급하고 있다.
서울 오금동 셋방살이에서 수입 동물의약품 판매로 시작한 업체가 어느덧 연 매출 1200억원대의 ‘알짜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존 의약품을 새로운 형태로 개선하는 능력만큼은 탁월해 경쟁업체 개발담당자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업체로 첫손에 꼽는 회사다.
지난 1993년 씨티씨바이오의 전신인 세축상사 시절부터 23년째 회사를 이끌어 온 창업주 조호연 회장은 “새로운 영역을 뛰어들 때 결정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면 안된다. 시행착오나 실패를 두려워하면 아무 것도 해낼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씨티씨바이오가 제약업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필름형 의약품’이다. 지난 2013년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의 복제약(제네릭)을 가장 먼저 필름형으로 개발한데 이어 최근에는 특허만료가 예고된 시알리스의 필름형 제품을 허가받았다.
필름형 제품은 알약 모양의 제품을 종이 껌처럼 얇은 필름 형태로 만들어 물 없이 먹을 수 있도록 개발한 약물이다. 특히 평소 지갑에 휴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큰 매력이다.
조 회장은 “필름형 의약품은 단순히 알약을 평평하게 민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 기존 의약품과의 약효나 흡수 시간도 같아야 하고 맛도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 보관 과정에서 찢어지면 안되는 등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씨티씨바이오의 기술력은 글로벌제약사들로부터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지난 20일 다국적제약사 애보트와 위궤양복합제를 수출하는 계약을 맺었다. 기존 위궤양치료제에 새로운 성분을 더해 효과는 늘리고 부작용은 줄인 개량신약을 애보트에 공급하는 내용이다. 연 매출 25조원 규모의 글로벌 10위권 제약사인 애보트가 직접 팔고 싶을 정도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낸 셈이다. 필름형 비아그라는 세계 제네릭 1위 업체인 테바에, 필름형 시알리스는 이탈리아 제약사 메나리니에 각각 수출했다.
최근 스위스 제약사 페링과 맺은 필름형 의약품 수출 계약은 씨티씨바이오 기술력의 결정판으로 평가받는다. 페링의 주력 의약품을 씨티씨바이오가 필름형 제품으로 만들어준다는 내용인데, 다국적제약사가 자사 제품을 한국제약사가 만들도록 요청하는 것은 보기 드문 현상이다.
공급 방식도 특이하다. 씨티씨바이오가 필름형 생산공정을 갖춘 독일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하면 독일 제약사가 생산해 페링에 공급된다. 조 회장은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스위스, 독일 회사가 만들지 못한 제품을 생산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씨티씨바이오의 기술력이 이미 세계적인 수준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씨티씨바이오는 국내업체들에도 굵직한 제품을 공급해주는 도우미 역할을 마다 하지 않는다. 지난 2013년 세계 두 번째의 조루치료제를 개발해 동아에스티, 종근당, JW중외제약, 제일약품 등에 판권을 넘겼다. 현재 세계 최초로 발기부전치료제와 조루치료제를 한 알로 만든 복합제 개발을 진행하며 업계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조 회장은 새로운 의약품을 연이어 만들어내는 비결에 대해 “가능성이 있는 분야에 집중한 결과”라고 답했다. 그는 “탄탄한 회사로 성장하려면 기술 혁신없이는 힘들다는 판단에 우수 전문인력을 적극적으로 영입했고 연구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이 회사의 인체의약품 사업부 직원 중 절반 이상이 연구원이다. 영업사원이 없다는 점도 독특하다. 세계적인 연구전문기업 길리어드와 닮은꼴의 한국제약사라는 호평을 받는 이유다.
연구원들의 작은 아이디어도 지나친 법이 없다. 조 회장은 “조루치료제는 우울증치료제로 만들었는데, 여러 논문을 통해 우울증 환자들의 성관계 지속시간이 길어졌다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했다. 일단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오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회사 매출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캐시카우 동물의약품 분야도 글로벌 시장을 정조준했다. 동물들의 소화를 도와주는 효소제 ‘씨티씨자임’은 남미, 중국 등에 이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시장 입성을 앞둔 상태다. 세계적으로 씨티씨자임의 경쟁제품을 보유한 업체도 1곳에 불과해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끌어올릴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씨티씨자임의 올해 매출 목표가 230억원인데, 500억원 돌파도 시간 문제라는 게 조 회장의 계산이다.
조 회장은 “사실 국내 시장에만 안주했으면 매출은 회사는 더욱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사업 기반으로는 먹고사는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 남들보다 해외에 빨리 나갔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많이 겪은 만큼 전문성도 생겼고 이제는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을 확보했다.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