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부천필·수원시향…클래식 본고장 녹인다

by양승준 기자
2014.07.07 07:05:00

유럽에 파고든 ''K클래식
서울시향, 4개국 대표 축제 초청
부천필, 창단 26년만 첫 유럽투어
정명훈 15일 런던심포니 지휘
김선욱·손열음 리사이틀도

일본 NHK심포니오케스트라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영국 클래식 음악축제 BBC 프롬스에 초대받은 지휘자 정명훈과 서울시향. 오는 27일 로열앨버트홀 공연을 앞둔 정명훈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러와 분위기가 뜨거운 축제”라며 기대감을 전했다. 잇따른 해외공연 초청에 대해선 “투어와 음반 레코딩이 오케스트라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사진=서울시향).


[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지휘자 정명훈부터 젊은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손열음까지. 한국의 클래식 스타들이 클래식의 본고장 유럽의 중심에 선다. 비단 몇몇 클래식 스타의 일이 아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중심으로 수원시립교향악단,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이 유럽 순회공연을 기획해 현지 공연에 나선다. 한국 공공 오케스트라들이 같은 해 유럽 순회공연에 나선 일은 사례를 찾아보기 드문 일이다. 그만큼 ‘K클래식’의 국제적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는 소리다. 이른바 ‘K클래식’의 봄이다.

△‘K클래식’에 풍덩…영국 사로잡을 정명훈·손열음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 백만인이여, 서로 포옹하라!” 오는 15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세계 3대 성당인 영국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울려 퍼진다. 주빈은 따로 있다.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세계를 목소리로 사로잡은 소프라노 캐슬린 킴과 테너 강요셉 등이다. 정명훈이 영국을 대표하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이 선율에 맞춰 한국의 성악가들이 화음을 보탠다. 이 성당 지하에는 6·25전쟁 참전용사 추모비가 있어 인류의 화합을 바라는 ‘합창’이 더욱 빛날 예정이다.

이 공연은 제52회 시티오브런던페스티벌에 한국이 올해 행사 주빈국으로 초청되면서 마련됐다. 축제위원장인 폴 거진이 2006년까지 8년 동안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축제위원장을 맡으며 클래식 등 한국 공연의 급성장을 직접 확인한 것이 계기가 됐다는 것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설명이다.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17일까지 바비칸센터, 맨션하우스 등 런던 시내 금융중심가에서 클래식을 중심으로 연극·무용 공연을 선보이는 시티오브런던페스티벌은 에든버러페스티벌과 함께 영국 3대 축제로 꼽힌다.

이 행사를 통해 영국은 ‘K클래식’으로 들썩인다. 지난달 스테이셔너스홀에서 성공적으로 개막 공연을 마무리한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바통을 이어받아 손열음이 14일 비숍게이트 그레이트홀에서 피아노 리사이틀을 열어 현지 관객을 유혹한다. 16일에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출신 젊은 연주자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이상은,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등이 같은 장소에서 하모니를 이뤄 한국 클래식의 미래를 보여준다.

서울시향(위)과 부천필(아래 오른쪽), 수원시향(아래 왼쪽)이 올해 모두 유럽 순회공연을 나서 현지 관객과 만난다. 세 공공오케스트라가 같은 해 유럽투어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공 관현악단에도 러브콜…부천필 창단 26년만 첫 유럽투어

8월부터는 공공 관현악단이 ‘K클래식’의 물결을 잇는다. 서울시향은 영국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핀란드 등 유럽 4개국 주요 음악축제에 초청받아 현지에서 무대를 꾸린다. 8월 21일 핀란드 투르쿠뮤직페스티벌을 시작으로 23일 오스트리아 그라페네크페스티벌, 25일 이탈리아 메라노뮤직페스티벌, 27일 영국 런던 BBC 프롬스에서 공연한다. 김선욱 협연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등을 주요 레퍼토리로 유럽 관객몰이에 나선다.

이 중 ‘BBC프롬스’는 2001년 일본의 NHK심포니오케스트라를 제외하고 아시아 오케스트라 첫 입성이라 의미가 깊다. 오스트리아 그라페네크페스티벌도 2011년 이후 다시 초청받았다. 그만큼 서울시향이 인정받고 있다는 소리다. 9년째 서울시향을 이끌어 온 정명훈 예술감독의 손길을 바탕으로 서울시향은 점차 성장했다. 2011년 영국 에든버러페스티벌 등 꾸준히 해외투어를 다니고,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 도이체 그라모폰을 통해 베토벤 ‘교향곡 9번’을 포함해 6장의 음반을 내며 실력을 다져 온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부천필은 창단 26년 만에 처음으로 유럽투어를 돈다. 8월 31일 체코 프라하 스메타나홀을 시작으로 9월 2일 독일 뮌헨 헤르쿨레스홀, 4일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라인홀 무대에 선다. 25년간 부천필을 이끈 임헌정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가 계관지휘자로 지휘봉을 잡고,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협연한다. 부천필은 유럽 첫 투어인 만큼 전상직 작곡가의 부천필을 위해 작곡한 ‘관현악을 위한 크레도’를 세계 초연한다. 이와 더불어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과 브람스 ‘교향곡 4번’ 등을 주요 레퍼토리로 선보인다. 앞서 수원시향은 올초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독일 등 4개국에서 순회공연을 열어 현지 관객들과 만나 호응을 이끌었다.

8월에서 9월까지 이탈리아 메라노에서 열리는 ‘메라노뮤직페스티벌’은 한국 오케스트라의 ‘잔치’다. 서울시향이 개막 공연을, 수원시향이 폐막 공연으로 축제의 문을 열고 닫는다. 해외 클래식 음악축제에 한국 오케스트라가 개·폐막 공연에 초청된 건 사상 처음이다. ‘콧대 높은’ 클래식 본고장이 한국 오케스트라에 대한 관심을 그만큼 높였다는 얘기다. 정명화·정경화·백건우·장영주·장한나·김선욱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솔로 연주자와 달리 한국의 오케스트라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게 사실. 이를 두고 클래식평론가인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유럽에서 동양의 오케스트라는 신기한 구경거리로 여겨졌던 게 사실”이라며 “이는 그만큼 한국 오케스트라가 오랫동안 기량을 쌓아오며 색을 찾고 진화를 했다는 결과”라고 의미를 뒀다.

전문가들은 한국 오케스트라의 잇따른 해외투어에 “고무적”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더 적극적으로 해외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봤다. 해외순회 공연이 오케스트라의 실력과 인지도 향상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박제성 클래식음악평론가는 “오케스트라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음악적 성숙도뿐만 음악 비즈니스 능력도 중요하다”며 “적극적으로 해외순회 공연 프로그램을 개발해 악단의 색을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를 통해서 악단의 체질 개선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