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허귀식 기자
2001.01.24 21:41:28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방문기간중 상해를 둘러본 것으로 확인되고 서울 방문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개혁개방으로 급선회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도 지난 22일 "북한이 과거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향하던 것에서 개혁ㆍ개방으로 상당한 수준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으로 보이는만큼 이에 대비해 철저하고 치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내각에 지시해 정부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줬다. 시장에선 남북한 관계 변화가 미칠 시장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작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전후로 기대를 모았던 남북경협테마가 빛을 보지 못한 점, 투자 리스크 등 부정적 측면이 부각된 점, 남북관계에는 역사적으로 부침이 심했다는 점 등을 들며 지난해처럼 올해도 힘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북한이 정말 개혁개방노선을 채택할까 = 남·북한은 분단이래 유례없는 화해무드를 만들었다. 그러나 북한의 정책이나 노선변화에 대한 공감대는 엷은 편이다.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겠다는 것이 기업이나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북한이 개방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징후들이 많긴 하다. 남북한간 정치적 대화가 시작됐고 금강산 개방, 개성공단개발 등 경협분야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북한은 개방할수록 체제위험이 커질 수 있으며 그렇다고 폐쇄경제로 돌아갈 경우 경제사정이 악화돼 또다른 체제위험의 복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으로 선택폭이 좁은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 그동안 북한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북한이 개혁 개방정책으로 진짜 선회한 것인가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북한이 앞으로 대외정책 등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이를 북한 밖의 경제주체들이 검증한 뒤에야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관심 분야 =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북한방송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비공식 방문"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중국 방문기간중 주용기 총리의 안내로 상해 도시건설계획전시관, 상해제너랄모터스승용차공사, 상해화홍전자유한공사 등을 참관했다. 또 상해 보산강철공사, 상해 벨유한공사, 선교현대농장개발구역, 상해도시건설계획전시관, 포동행정구청사, 포동신구총수원주택구역, 상해지하철도 등 상해교통시설, 상해증권교역소, 상해국제술센터대주점, 소프트웨어개발연구소, 인간게놈남방연구센터, 상해대극장, 상해텔레비젼방송탑, 육가주중앙녹지 등을 돌아봤다.
이같은 행보는 전자 IT(정보기술) 바이오 교통 자동차 경공업 등에 대한 김 위원장의 관심을 어느정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상해증권교역소(증권거래소) 방문은 주식시장이 현대자본주의의 대명사이자 꽃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북한방송은 상해시를 둘러본 김 위원장의 느낌도 상세히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방송은 김 위원장이 "상해는 천지개벽되었다", "계속하여 활력있고 약동하는 상해시는 중국의 정치, 경제, 과학문화의 전반적 발전을 추동하는데서 큰 몫을 맡고 있는 중요한 국제도시"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반응은 상해시를 "자본주의 타락의 온실"이 아닌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의 성공작"으로 보는 "긍정적 평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김 위원장은 중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신의주시내 생필품 공장 등 경공업공장들을 현지지도한 것으로 알려져 신의주지역의 개발과 경공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특수의 조건 = LG경제연구원은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내놓은 "정상회담 이후 북한특수의 5대 조건"제하의 보고서는 ‘북한특수’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북일수교가 성사되고 ▲우리 정부의 대북지원 기금 설치를 통해 재원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육상운송로 개통 ▲경제특구 확대설치 ▲투자기업 경영권 보장 등의 여건이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북한에 대해 ▲식량부족분을 메우기위한 연간 4억∼5억달러규모의 지원 ▲에너지 지원에 매년 2억∼4억달러 ▲사회간접자본 확충 ▲비료, 정유, 제철, 기계, 화학 등 주요 기간산업 부문의 재건 연간 10억달러 등으로 연간 20억 달러씩 10년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필요한 돈은 일본의 대북 배상금은 50억∼100억달러, 미국의 대북중유 및 식량지원 자금 연간 1억~2억달러 등으로 메우고 나머지는 남한과 국제기구, 외국자본 등으로 조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경제를 정상화하는데 필요한 자금규모는 추정하는 기관이나 전문가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나 한국의 경제규모로는 감당하기 부담스런 수준이라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보고서는 진출유망한 사업으로 노동집약 제조업과 사회간접자본을 제시했다. 의류, 신발, 완구 등 전통적인 경공업 분야와 가전제품 및 전자부품 등에서 노동집약적인 공정은 모두 북한 진출을 통해 이익을 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사회간접자본과 기간산업 재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도 재원만 마련된다면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공업분야의 기업이나 건설 통신관련 기업들이 남북경협이 진전될 경우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경의선(서울-신의주) 경원선(서울-원산) 금강산선(서울-내금강) 등 철도망 복원과 판문점-개성간 국도1호선 등 단절 도로구간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축을 추진하거나 구상하고 있어 물류관련기업도 직·간접적으로 혜택을 기대해 볼만한하다.
북한특수에 따른 혜택이 기업의 실적으로 반영되기 위해선 기업활동의 성과를 제대로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보장장치, 즉 북한의 지급능력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사업자체의 경제성뿐 아니라 투자 등 기업활동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이 먼저 시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신인도 개선에 기여할 듯 = 남북관계개선은 대외적으로 국가위험(컨트리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긍정적 변화로 이해된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으로 무역 투자 금융부문에서 높이 매겨졌던 투자위험이 떨어질 수 있다. 국가위험의 감소는 해외차입비용을 줄이고 외국기업의 국내투자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정기업이 득을 보기에 앞서 국가경제 전체에 득이되는 잣대인 신인도 측면에서 일부 플러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등으로 남북경협에 앞장설 수 있는 기업들이 전체적으로 각광받을 수 있지만 길게보면 개별적인 사업의 경제성, 투자자본의 회수가능성 등이 관건이라는 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