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자란’ 엔비디아에 폭락한 韓반도체…증권가 “새로운 기회”
by이정현 기자
2024.08.30 05:10:00
눈높이 못미친 엔비디아 실적에 KRX 반도체 지수 4% ‘뚝’
‘어닝 서프’가 ‘쇼크’로…삼성전자·SK하닉 동반 급락
실적 불확실성 생겼으나 AI 성장 지속성 및 업황 전망은 긍정적
“단기 주가 변동성 확대 예상되나 펀더멘털 영향 제한적”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시장의 예상치를 넘어서는 실적을 기록했지만, 그 폭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엔비디아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를 흔들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는 확인할 수 있었으나 성장 속도가 이전처럼 빠르지 않다는 우려가 ‘쇼크’로 작용하며 외국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자금이 이탈하면서다.
증권가에서는 올 상반기와 같은 반도체 테마 초강세가 재현되기는 힘들다고 보면서도 과도한 주가조정이 또 다른 매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9일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주요 반도체 종목을 추종하는 KRX 반도체 Top 15 지수는 이날 하루 동안 4.28% 하락하며 부진했다. 엔비디아의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22% 증가하며 처음으로 300억 달러를 돌파하는 등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으나 ‘330억 달러를 넘길 수도 있다’는 시장의 바람에 미치지 못한 데 따른 실망감이 투자심리 약화로 이어졌다. 블랙웰 출시 이후의 실적과 전방 수요에 대해 명확하게 언급하지 못했다는 점도 주가 하락의 이유로 언급된다.
특히 그간 AI 산업 성장에 대해 기대하며 반도체 종목을 사들였던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이 두드러졌다. 이날 하루 동안 외국인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합쳐 4709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이 탓에 삼성전자는 3.14%, SK하이닉스는 5.35% 주가가 급락하며 합산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시가총액 비중 25%가 무너졌다. 엔비디아의 성장세 둔화가 AI 반도체 급성장기가 지났다는 판단으로 이어지며 차익 실현 압력을 키웠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이 같은 반도체 관련주의 폭락에도 증권가는 AI 반도체 산업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기존과 같은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지속해온 ‘AI거품론’ 우려는 잠재울 수 있었다는 분석에서다. 또한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뿐 엔비디아의 향후 실적 전망치도 예상을 웃도는 점도 AI 산업이 성장을 이어가리라는 기대를 키운다.
다만 투자자의 눈높이가 여전히 높은 만큼 하반기 실적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매출액 증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수주 물량의 증가세가 가파르다는 점에서 AI 수요가 견조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우려가 있으나 3분기 및 내년 실적 방향성이 단단한 종목을 중심으로 반도체 섹터의 비중 확대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진단했다.
증권가에서는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가 폭락하며 국내 반도체 종목의 주가도 과하게 하락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시장의 과도한 눈높이가 주가 급락을 이끌어낸 만큼 펀더멘털이 탄탄하다는 점을 고려해 투자전략을 짤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편에서는 이달 초 블랙먼데이 이후 한국 증시가 상대적으로 프리미엄을 덜 받았던 것도 이유로 꼽는다.
문준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가 실적 발표 이후 주가가 급락했으나 오히려 이를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AI 시장은 피크아웃은 커녕 확장 기대감이 유효한 상황이며 엔비디아 및 관련주의 단기 주가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으나 펀더멘털에 미칠 변화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엔비디아의 주가 조정 이후 AI 반도체의 성장 전망과 적정 주가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변동성도 지속할 전망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 실적 발표를 계기로 AI산업, 반도체 성장에 대한 기대감은 둔화할 수 있다”면서도 “단기 조정을 겪으며 이전만큼 강한 상승 탄력을 보이지 못하더라도 AI 산업에 대한 투자와 펀더멘털의 상승 추세는 유효하며 주도주의 상승 추세 둔화 이후 후발 종목의 밸류에이션 과정에서 기회가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