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도 해리스도 관심없는, 美 재정적자가 리스크”

by김상윤 기자
2024.08.09 05:00:00

강인봉 뉴욕의회 수석 이코노미스트 인터뷰②
“재정적자 늘면 장기금리 지속 상승…QE 쉽지 않아"
“美경제 연착륙 확률 50%..경기침체 우려 과해”
연준, 데이터 보며 ‘계단식 인하’…내후년 3~3.25%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미국 경제에서 현재 가장 큰 리스크는 계속 불고 있는 재정적자다. 시장에서 우려하는 경기불황이 다가왔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경기 진작책이 필요한데, 이를 시행할 여력이 점차 줄고 있다. 그럼에도 대선 후보들이 아무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다.”

뉴욕주의회 강인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7일(현지시간)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경기침체 우려보다는 막대한 재정적자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경제전망과 추계 등을 통해 의회 재정위원회가 세수와 지출 등 재정계획을 짜는 데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눈덩이처럼 불고 있는 재정적자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향후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경제에 충격이 더 커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재정적자가 계속 늘어나면 장기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고, 단기금리와 달리 연준이 컨트롤하기에 한계가 있다”면서 “결국엔 양적완화(QE)라는 극약처방을 내려야 하는데 이 경우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하는 등 금융시장에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과 그 후 대규모 경기 부양책 시행, 감세, 급격한 금리 인상 등으로 국내총생산(GDP)의 6%에 달하고 있다. 재정적자 규모가 늘면 부족한 예산을 메우기 위해 국채발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정부부채가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123%에서 2029년 134%까지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모두 재정적자 축소에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올려야 재정적자가 줄 수 있는데, 둘 다 인기 없는 정책”이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년 도입해 내년 일몰하는 감세정책을 연장할 가능성이 크고, 해리스 부통령 역시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선 증세를 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발생할 문제를 기다리다 보면 나중에 처리하기가 굉장히 불편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강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이 재정적자 우려 대신 경기침체 우려를 강하게 제기한 것은 지나쳤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의 산업생산지수는 2년여간 보합세를 보이다 5~6월에 상승세를 타고 있고, 실질소득 증가율도 둔화했지만 상승세는 지속하고 있다”면서 “소비증가율은 전년보다 둔화한 건 사실이지만 주로 자동차와 IT기기 등 내구재를 제외하고는 탄탄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실업률이 연초대비 빠르게 오르면서 4.3%까지 치솟자 고용 위축 우려가 커졌지만, 역사적으로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며 “그간 공급부족 때문에 부자연스러웠던 상황이 이제 안정화되고 있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현재 드러나는 경제지표만으로는 미국 경제가 연착륙할 확률은 50%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한 지표로 특정 분야의 과잉 여부를 판단하는데 현재로서는 과거와 같은 ‘버블’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강 이코노미스트는 “2007~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때는 미국 주택시장 과잉으로 부실대출이 늘어나고 금융시장이 붕괴하면서 실물경제가 타격을 입어 불황이 왔다”면서 “이번의 경우 금융시스템의 부실이나 과잉은 없고, 인공지능(AI) 붐에 테크 분야 버블이 좀 있을 수 있긴 하지만, 과거처럼 심각하진 않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최근 기술주들이 급락한 것은 경기침체 우려라기보다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서 조정이 이뤄진 것”이라며 “일본의 금리 인상과 연준의 금리 인하가 맞물린 상황에서 경기침체 가능성이라는 구실이 마련되니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를 근거로 월가에서 연준에 긴급 금리 인하를 비롯해 연내 ‘엘리베이터’식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압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이코노미스트는 “월가 입장에서는 금리가 낮을수록 투자에 유리하다 보니 영향력 있는 학자와 인물을 내세워 강하게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다”면서 “경기가 급격하게 침체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를 빠르게 내린다면 오히려 시장이 더 교란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가 더 가파르게 진행될 경우 일본과 금리 차가 급속하게 줄고 엔 캐리 트레이드가 더 빨리 풀리면서 글로벌 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연준이 나오는 경제지표를 하나씩 평가하면서 점진적으로 ‘계단식’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의 책무는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이고, 금융시장안정은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 이후 추가된 비공식적인 책무일 뿐이다”면서 “금융시장이 심각하게 요동치면 그때 가서 연준이 고려할 사항이지, 지금 단계에서 과감한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강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이 점차 목표치인 ‘지속적인 2%대’에 도달하면서 연준이 점차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과거와 같이 기준금리가 2%대로 향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과열되거나 침체하지 않고 잠재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는 실질중립금리는 그간 연 0.5%로 간주했지만, 최근 1% 이상으로 상향된 것을 고려하면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명목금리는 3%를 웃돌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재정적자 규모, 인구고령화, 팬데믹 이후 탈세계화 등을 고려하면 실질중립금리는 과거보다 상향됐다고 본다”면서 “내후년께 3~3.25%까지 떨어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