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24.06.13 05:00:00
기업들이 배임죄 공포에 떨고 있다. 정부가 증시 밸류업 프로젝트의 하나로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에 속도를 내면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로 한정한 현재와 달리 주주로까지 확대하려 하기 때문이다. 방식은 관련 조항(상법 제 382조 3)에 ‘총주주’ 또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하는 형태가 유력하다. 개정 논의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투자자 이익 보호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한 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도 잇따라 지지 의사를 밝힌 상태라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취지를 백번 이해하더라도 정부 태도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배임죄의 영향력이 커져 기업 경영진 의사 결정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했는지 우선 의문이다. 형량이 무겁고 범죄 구성 요건도 포괄적인 배임죄의 공포를 떨치기 어려운 경영진들로선 앞으로 다양한 주주들의 크고 작은 요구를 일일이 충족시킬 수 없어 판단을 사릴 수밖에 없다. 기업가정신의 위축, 훼손이 불가피하다. 이사 충실 의무 확대는 또 회사와 주주 이익이 다르다는 생각을 전제로 깔고 있지만 이 역시 수긍하기 힘들다. 회사가 잘 돼야 주주 몫도 커진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공동운명체나 다름없는 회사와 주주를 적대적 또는 경쟁적 관계로 단정하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이사 충실 의무 확대는 재벌 개혁을 명분으로 기업 발목 잡기에 앞장서 온 더불어민주당도 22대 국회 입법 과제의 핵심 중 하나로 잡고 있다. 박주민, 정준호 의원 등 법안 발의에 나선 의원들뿐 아니라 상당수 의원이 동조 중이다. 여소야대의 정치 지형에서 국회 문턱을 넘을 확률이 어느 때보다 크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 활동을 촉진하고 투자 마인드를 북돋워줘야 할 정부가 토끼몰이 하듯 야당과 같은 목소리를 낸다면 기업인들은 설 자리가 없다.
거대 야당과의 협치가 기업 때리기부터 시작돼서는 안 된다. 정부는 물론 여당도 법 개정의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해 주기 바란다. 글로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손과 발을 우리 손으로 묶는 우를 범할 것인가. 재계가 내는 반대 목소리는 엄살이 아니라 현장의 진실을 알리는 신문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