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도 좋지만”..살기 위해 고치는 아파트들

by전재욱 기자
2024.05.22 05:00:00

재건축 추진하는 여의도 삼부, 최근 승강기 전부 교체
강남 은마, 장기수선충당금 10년새 대폭 지출
재건축 소강기 접어들면서 장기전 대비할 필요 공감대
"제때 고쳐야 제대로 고쳐..지금이 미래보다 중요한 가치"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는 살기 조금 불편하더라도 고치는 데에 인색하기 마련이다. 나중에 철거할 텐데 돈을 들여 수선하는 게 낭비라고 인식하는 탓이다. 그러나 최근 수선에 적극적인 재건축 단지가 눈에 띄어 정비업계 이목이 쏠린다. 당장 거주하는 데 필수적이기도 하거니와, 정비사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장기전에 대비하는 조처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래픽= 문승용 기자)
2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삼부 아파트는 지난달까지 두 달에 걸쳐서 단지 승강기 20대를 전면 교체하는 공사를 단행했다. 단지가 승강기를 전면 교체한 것은 1998년 이후 26년 만이고, 1975년 입주한 이래 두 번째다. 승강기 교체 연한은 법으로 정해진 바는 없지만 통상 15년을 전후로 한다.

현재 여의도삼부는 추진위원회가 설립한 단계로서 재건축을 준비하고 있다. 훗날 재건축으로 단지를 헐면 이번에 교체한 승강기를 재활용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승강기 교체 비용은 매몰비용(회수할 수 없는 비용)인 셈이다.

이를 두고 여의도삼부 거주민은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느라 겪은 불편을 생각하면, 모두가 비용을 나눠 부담하고 불편을 줄이는 게 삶의 질 측면에서 나은 선택”이라며 “나중보다 중요한 게 지금이다”고 말했다.

강남 재건축을 상징하는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은마는 2022년 강남구에서 공공지원금 9억원을 지원받아 아파트 수리에 썼다. 수년 안에 재건축하면 돌려주는 조건으로 지원금을 받은 것이다. 이를 두고 당분간 재건축이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붙는다.

은마아파트 장기수선충당금 잔액 추이를 보더라도 수선 의지가 읽힌다. 은마 장기수선충당금은 올해 23억원 수준으로 2015년(153억원)보다 130억원 줄었다. 최근 1년 동안 이 아파트가 단지 수선을 위해 건 입찰 공고는 25건이다. 승강기를 비롯해 단지 환경개선 사업 공사와 관련한 내용이다.



물론 개별 재건축 단지마다 장기수선충당금을 지출하는 사유는 개별적이다. 아파트 시공 과정에서 완결성과 준공 이후 유지·보수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재건축 돛을 올린 송파구 잠실5단지 장기수선충당금 잔액은 10년 동안 90억~100억원으로 균등하게 유지하고 있다.

다만 재건축을 앞두면 장기수선충당금 지출에 소극적인 것은 대체적인 흐름이다. 장기수선충당금은 재건축하게 되면 소유주 각자가 돌려받는 구조라서, 아낄수록 훗날 소유주가 돌려받는 몫도 커지기 때문이다. 여의도삼부와 은마 등 사례는 이런 통념과 비교된다는 것이다.

정비사업이 소강기를 띠면서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게 변수로 꼽힌다. 치솟은 공사비와 분담금으로 건설사와 시공사 간에 이견이 불거지고, 단지 내부에서도 사업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기가 예사다. 지방은 물론이고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살면서 불편을 겪을 기간이 길어지니, 장기수선충당금을 지출해 불편을 줄이는 것이 방법으로 거론된다.

관건은 제대로 고치려면 제때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공사비가 치솟는 것처럼 단지 수선비도 늘어나는 추세를 무시하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승강기 주요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톤당)은 4년새 42%(87달러→124달러) 상승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단지 수선에 소극적이게 되면 당장의 비용보다 훗날의 비용이 더 커져 손해일 수 있다”며 “현재 정비사업을 둘러싼 시황을 고려하면 현재의 주거 적합성 가치를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