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23.12.01 05:00:00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투자의 대규모 손실 우려가 높아지면서 금융 당국이 판매사인 은행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9일 “일부 은행에서 ELS와 관련, 고위험 상품을 고령자에게까지 무리하게 판매한 게 적절했는지 의문”이라며 강도 높은 제재를 예고했다. 은행들이 소비자의 투자성향 등에 맞는 상품을 권유해야 한다는 적합성의 원칙을 훼손하며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얘기다.
ELS는 주가지수 등 기초자산의 등락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고위험상품이다. 2021년 1만 2000대까지 치솟았던 홍콩H지수가 최근 5800대로 반토막나면서 이번에 문제가 된 상품은 3년 만기가 되는 내년 초 대규모 손실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국내 5대 은행에 만기가 도래하는 관련 상품 규모만 8조 4000억원으로, 이대로라면 3조원 이상의 피해가 예상된다. 역대 최악의 금융사고인 라임사태 피해액(약 1조 6000억원)을 훌쩍 넘는다.
모든 투자의 1차적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라임·옵티머스 등 이전의 금융사고처럼 실적 경쟁에 급급했던 은행과 늑장대응을 한 금융당국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모럴 해저드에 빠진 은행의 책임이 무겁다. 가입자의 20%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층이라고 하는데 이런 고위험상품을 팔면 팔수록 인사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일선 직원들로선 적극적으로 투자를 권유했을 가능성이 높다. 은행들은 판매과정 녹취와 AI 기계음을 통해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다고 하지만 이런 조치는 불완전판매를 막기보다 오히려 면피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판매과정에서 위험 고지를 누락하거나 축소한 사실이 있는지 철저히 밝히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불완전판매로 인한 피해인지 일반적인 투자실패 사례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가려야 한다. 라임펀드 판매사들에 투자 원금 100% 반환을 권고하면서 과잉조치라는 논란이 일었던 만큼 투자자의 자기책임원칙을 훼손하는 섣부른 피해 보상은 경계할 일이다. 무엇보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 불거진 이번 사태가 판매사뿐 아니라 투자자의 책임을 분명히 확립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