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예스 재팬’?...핫플마다 ‘일본풍 간판’ 수두룩

by김혜선 기자
2023.10.02 10:37:35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직장인 정모(28)씨는 추석을 맞아 고향인 울산으로 내려갔다가 깜짝 놀랐다. ‘맛집’이 모여있는 번화가에 일본어로 표기된 음식점 간판이 우후죽순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음식점은 한글을 찾아볼 수 없어 어떤 음식을 파는지 짐작하지 못할 정도였다. 정씨는 “최근 새로 생긴 음식점에서 일본풍 느낌을 내는 게 ‘트렌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국적인 느낌을 줘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음식을 파는지 잘 모르겠다. 한국어도 병기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한 번화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본풍 간판들. (사진=이데일리)
정씨가 본 음식점 간판은 엄연히 따지면 불법이다. 옥외물광고법에 따르면, 간판 등 옥외광고물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로 표시해야 하고, 외국 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한글과 병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옥외물광고법 상 4층 이하에 설치되는 면적 5㎡ 이하 간판은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허가나 신고 절차가 없으니 사실상 단속을 할 수 없는 셈이다.

수도권 번화가에서도 일본어로 된 간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경기도 한 번화가에서는 새로 개장한 음식점 중 일본어로 된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 2019년 ‘노 재팬’ 열풍이 불 당시 이자카야 간판을 떼고 한국식 메뉴를 대체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일본식 선술집에서 만난 시민은 “최근 엔화가 저렴해져 일본 여행을 가는 친구들이 많아졌다”며 “여행 후 일본 감성을 느끼고 싶어 선술집을 찾았다. 요즘 일본풍이 유행인듯 하다”고 했다.



최근에는 서울 한 번화가에 일본풍 술집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표어인 ‘내선일체’와 비슷한 간판이 등장이 논란이 된 바 있다. 광진구에 위치한 이 술집 대형 간판은 두 사람이 어깨동무를 한 채 달리는 모습을 담았다.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의 유명 관광 명소 ‘글리코상’과 유사한 패러디 간판이지만, 일부는 “내선일체 포스터 같아서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선일체(內鮮一體)는 일본이 한국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든 구호로, 일본 본토인 내(內)와 조선(鮮)이 한 몸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내선일체라는 구호화 함께 조선과 일본이 2인 3각 달리기를 하는 포스터를 뿌렸다. 내선일체 운동에는 창씨개명, 신사 참배 강조, 일본어 생활 등 한국 문화를 말살하려는 움직임도 함께 담겼다.

한편, 누리꾼들은 내선일체 유사 간판에 대해 ‘불쾌하다’는 주장과 ‘억지 논란’이라는 주장이 갑론을박을 벌였다. 한 누리꾼은 “아무리 일본 분위를 내고 싶어도 선을 넘은 것 같다”고 지적했고, 다른 누리꾼은 “일본에도 한국 거리가 있고 포차컨셉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가게 많지 않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