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권 입맛 맞춤용' 비난에…KDI, 보고서 발간절차 손질

by조용석 기자
2023.03.31 05:00:00

대면자문 등 의무화 추진
''법인세 인하'' 논거 활용한 보고서
내부 검토 지시사항 무시로 논란
KDI 개선에…학계 긍정적 의견

[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공지유 기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KDI포커스’ 등과 같은 현안보고서 발간에 앞서 대면자문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제대로 된 의견수렴 절차 없이 정권 입맛에 맞춘 보고서를 내는데 급급해 한다는 비난에 보고서 발간 절차 개선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30일 KDI는 국회 기재위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서 “다양한 의견수렴을 통한 ‘KDI 포커스’ 질 제고를 위해 현행 비대면(서면)형태와 함께 대면자문도 병행해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KDI는 공개 의견수렴 창구 역할을 하는 오픈 레퍼리 시스템에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브라운백 미팅(간편한 식사와 함께 진행되는 회의)을 추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경제분야 국내 최고 싱크탱크로 꼽히는 KDI가 보고서 발간절차 개선에 나선 것은 작년 10월 발간된 KDI포커스 ‘법인세 세율체계 개편안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정책과제’로 불거진 논란 때문이다. 해당 보고서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고 세율구조를 단순화하는 정부 세제개편안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후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국회에서 야당에 법인세 인하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보고서를 적극 인용했다.

하지만 집필자인 김학수 연구위원이 지정검토자로부터 ‘중장기 재정상황을 고려한 세수확보 필요성 고려’ 등 13개 의견을 받았음에도 대부분 반영하지 않고 출간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복수의 지정검토자가 거부(Reject)하면 발표가 불가한 연구보고서와 달리, KDI포커스와 같은 현안보고서는 집필자가 지정검토자 의견을 수용하지 않아도 발간에 문제가 없다. 현안보고서에는 ‘저자의 개인 의견’이라는 단서가 붙는 만큼 연구원이 과도하게 통제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해당 보고서는 법인세 인하 논거로 활용되는 과정에서 ‘집필자 개인 의견’이라는 설명 없이 ‘KDI’로만 표기되면서 연구원의 공식 입장인 것처럼 활용됐다. 실제로 기재부가 배포한 ‘반도체투자 세액 공제법’ 관련 설명자료에서도 해당 보고서에 발표한 수치(법인세 1%포인트 인하시 투자 2.6%증가)가 인용됐으나 출처는 KDI로 표기됐다.



지난해 10월 발간된 KDI포커스(현안보고서) ‘법인세 세율체계 개편안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정책과제’(자료 = KDI)
KDI는 당초 “(KDI 포커스는)연구자 본인의 소신이 반영된 것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개인 의견이라는 표기 없이 연구원 공식 의견으로 활용되면서 급하게 제도개선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대면 자문 형태로 발간검토 작업이 진행되면 온라인을 활용한 비대면 자문보다 의견 수용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도 KDI의 발간절차 개선에 긍정적인 의견을 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KDI포커스로 나오니 공신력 있는 것처럼 보여 기재부나 정치권에서 인용하는 문제가 생겼다”며 “연구원 내에서 거를 수 있도록 리뷰를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혜영 의원은 “특정 저자의 견해라고 하더라도 간행물이 KDI의 이름으로 인용되는 만큼 국책연구기관 차원의 신중한 출간물 심사과정이 필요하다”며 “정권 맞춤형 보고서 시비가 다시 일지 않도록 심사과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동철 KDI 원장(사진 =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