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 사전심문제가 뭐길래?…검찰vs법원 대충돌

by이배운 기자
2023.03.09 06:00:00

대법원 ''국민 기본권 보호'' 취지 압수수색 통제방안 예고
檢 “수사 현실 몰라도 너무 몰라…범죄 억제 고려안해”
전자정보 검색 강력제한…마약범죄 대응능력 상실 우려
공수처·경찰도 사실상 반대 “수사 밀행성·신속성 저해”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대법원이 압수수색 영장도 사전에 판사가 심문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가운데, 검찰 등 수사 기관들은 범죄 대응능력이 대폭 약화 될 것이라며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캔디(엑스터시), 케이(케타민), ㅍㅌ(펜터민), 펜디(펜디메트라진) 등 은어를 사용해 마약을 거래하는 채팅 내용 (사진=대검찰청)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이 지난달 입법예고한 ‘형사소송규칙 일부개정규칙안’은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에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나 변호인을 심문하는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를 도입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아울러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 변호인 또는 피압수자에게 (압수수색) 집행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하고, 수사기관이 컴퓨터나 휴대전화 등에 저장된 ‘전자정보’를 압수·수색하려면 영장 청구서에 ‘분석에 사용할 검색어’와 ‘검색 대상 기간’ 등 영장 집행계획을 써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대법원은 이번 개정안이 그간 무분별하게 이뤄졌던 압수수색을 통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전자정보 압수수색 요건과 통제 장치가 없으면 사생활 비밀의 자유, 정보 자기결정권 등 국민의 기본권을 심대하게 침해할 수 있어 최소한의 제한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 등 수사기관은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은밀하고 신속한 범죄 수사가 어려워지며, 특히 걷잡을 수 없이 폭증하는 마약범죄 대응 능력이 대폭 약화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개정안에 대해 “수사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조치”라며 “피의자 인권 보호도 물론 중요하지만,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비판했다.

검찰은 개정안 중 ‘전자정보 압수·수색영장 집행 방법 제한’은 마약 범죄 수사를 사실상 못하게 하는 규정이라고 지적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검찰은 압수·수색영장 청구 시 전자정보 검색에 사용할 ‘검색어’를 미리 정해서 제출해야만 한다.

그동안 검찰이 파악한 마약·판매상을 지칭하는 은어 중엔 ‘케이’ ‘코코아’ ‘보약’ ‘구찌’ ‘술왕’ ‘통술’ ‘뻐꾸기’ ‘후리’ ‘예술’ 등이 있다. 이들 은어는 정해진 규칙 없이 개인이 마음대로 만들며 수시로 변한다.

이와 관련해 검찰 고위관계자는 “‘마약 팝니다’ ‘마약 삽니다’고 당당하게 걸어놓는 범죄자는 어디에도 없다”며 “이들 다양한 은어를 사전에 정확하게 파악해서 압수수색 전에 영장에 적어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검찰은 마약을 ‘사탕’이라고 부르는 조직의 정보를 입수하고 ‘사탕’을 검색어로 수색을 펼치겠다는 영장을 발부받아 수사를 벌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수사에 돌입한 결과 조직이 마약을 ‘사탕’이 아닌 ‘별사탕’이라고 부르는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검찰은 ‘별사탕’이라는 검색어를 사용해 전자정보를 수색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이들 조직이 ‘사탕수수’라는 은어로 또 다른 마약을 거래한 사실을 포착해도 ‘사탕수수’라는 검색어를 사용해 전자정보를 수색하는 것 역시 금지된다. 검찰은 ‘별사탕’ ‘사탕수수’라는 검색어로 수사하겠다는 내용의 압수수색 영장을 새로 받아야 하며, 이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조직원들은 증거를 숨기고 도주할 위험이 크다.

관계자는 “만약 검찰이 영장을 새로 받지 않은 채 ‘별사탕’ ‘사탕수수’ 검색어를 사용해 범죄자들을 잡으면 오히려 변호인 측은 ‘적법한 절차를 위반한 증거수집’이라고 맞설 것”이라며 “실제로 증거 능력을 상실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고, 그만큼 검찰 수사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판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내주기 전에 사건 피의자, 변호인, 관계자 등을 불러 대면 심리하도록 하는 개정안 내용도 수사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수사 상황이 피의자에게 실시간 노출되고, 별도의 심문 절차를 진행하는 것만으로 수사 지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압수수색 참여권 보장 대상으로 ‘피의자, 변호인 또는 피압수자’를 명시한 개정안은 피의자가 압수·수색의 모든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 증거인멸·도망 위험을 높이고, 간첩 사건처럼 장기간에 걸친 증거수집이 필요한 수사는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공수처도 최근 대법원의 개정안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내놨다. 공수처는 영장 발부 전 판사의 대면 심리 도입에 대해 “피해자 보호에 역행하고 수사의 밀행성에 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압수수색 영장 청구서에 ‘집행계획’을 미리 쓰도록 한 것에 대해선 “예기치 못한 현장 상황에 대처할 수 없어 불완전한 압수수색에 따른 실체적 진실 발견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 역시 개정안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수사의 밀행성과 신속성 저해를 우려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처럼 수사기관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대법원은 오는 9일부터 이틀 동안 충남 부여군에서 전국법원장 간담회를 열어 압수수색 영장 실무 현황과 적정한 운용 방안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