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은 레고랜드 사태

by이연호 기자
2022.11.17 06:30:00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강원도 문제는 강원도가 대응을 해야 하고, 아직 그 여파가 확산될 단계는 아닌 것 같지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겠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회사채 시장 여파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 같이 답했다.

“채권 발행 당시의 당사자 간 약정대로 금리 조건 등을 조정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채무불이행은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흥국생명이 지난 2017년 발행한 5억 달러 규모 외화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콜옵션(조기상환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한 지난 2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 같이 밝혔다.

하지만 정책 당국의 이 같은 분석과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추 부총리의 위 발언이 있고 불과 9일 뒤인 지난달 23일 금융당국은 ‘50조 원+알파(α)’ 규모의 유동성 공급 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1일엔 5대 금융지주에서 ‘올해 연말까지 95조 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 및 자금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추가로 지난 11일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 지원에 2조8000억 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했다.



“문제되지 않는다”던 금융위원회는 뒤늦게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 사태에 개입해 흥국생명의 결정 번복을 이끌어 냈다.

정부의 뒤늦은 각성에도 레고랜드 사태의 나비 효과는 엄청나 시장의 충격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국공채의 하나로 사실상 무위험 채권으로 분류되는 지방채마저도 돈을 떼일 가능성이 생기자 시장은 빠르게 얼어붙었다. 신용등급이 AAA로 최상인 한국전력채권(한전채)마저도 잇달아 유찰되는 등 채권 시장 전반에 걸쳐 자금 경색이 확산됐다.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이라도 채권 금리를 예전보다 훨씬 더 높게 제공해야 하고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경우 아예 발행을 시도해 볼 수조차 없는 상태인, 이른바 돈줄이 마르는 ‘돈맥경화’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신전문금융회사(카드·캐피털사)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여신전문금융채(여전채) 금리 역시 급등하는 등 2금융권의 조달 비용 역시 치솟았다. 2금융권의 조달 비용 급증은 저신용자들을 대출 절벽으로 떠밀어 이들을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았다.

설상가상으로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충격이 여전한 상태에서 이달 초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 논란으로 자금 시장 경색 국면은 가중됐다. 한국채에 대한 인식이 악화하기 시작하며 국내 금융사들의 외화 표시 채권 가격은 급락했다.

강원도는 다음달 15일까지 2050억 원 보증 채무 전액 상환 방침을 밝히고 흥국생명은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했지만 한 번 무너진 시장의 신뢰는 단기간에 쉽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야당에선 금융당국의 책임론을 거세게 제기하는 동시에 김 지사에 대한 형사 고발도 검토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채 관련 조치를 할 경우, 금융당국과 협의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방재정법 개정안도 준비 중이다.

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금융당국은 안 써도 될 돈 약 148조원을 투입했다. 구원투수로 어쩔 수 없이 반강제 등판한 은행들의 불만은 애교 수준에 가깝다. 당국의 제때의 한 바늘은 사태를 이렇게 키우지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고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