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투자 394.4% 급증?…착시에 빠진 韓 기업 투자

by김상윤 기자
2022.07.21 06:30:00

<中 침체 직격탄 맞은 현지 진출 기업들>
중소기업은 '엑소더스'..대기업은 명맥만 유지
반도체, 자동차만 계획된 수준서 설비투자 진행
"'탈 중국' 속도 너무 빠르다..포기할 수 없는 시장"

[이데일리 김상윤 최영지 이다원기자] 394.4%.

지난 1분기 발표된 대(對) 중국 해외직접투자(ODI) 증가율이다. 올 1분기 대중 투자는 42억6200만달러로, 전년 동기(8억6200만달러)보다 무려 34억달러가 껑충 뛰었다. 미·중 갈등이 여전한데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중국이 봉쇄정책을 펴는 와중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던 셈이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서 다시 사업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수치에는 ‘착시’가 있다. 20일 이데일리가 수출입은행의 해외직접투자 세부통계를 분석한 결과 42억6200만달러 중 32억2900만달러는 SK하이닉스의 중국 다롄 공장 투자분이다. 지난해말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SAMR)이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및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사업인수 허가를 냈고 인텔이 기존에 하던 다롄 공장 투자를 SK하이닉스가 이어받은 셈이다. 이를 제외하면 10억달러 수준으로 코로나19가 극심했던 작년 1분기와 유사한 수준이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우리나라 기업의 대중 투자는 2013년 52억2200만달러를 기록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첵)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이 시작되면서 2015년 29억9200만달러까지 고꾸라졌다. 그러다 2019년 58억5400만달러까지 회복되긴 했지만, 2018년 48억500만달러, 2019년 58억5400만달러, 2020년 45억100만달러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크게 늘지도, 크게 줄지도 않은 수준에서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세부내역을 뜯어보면 암울한 성적표다. 유통이나 미디어, 소프트웨어 투자는 수면 아래로 내려갔고 메모리 반도체, 자동차, 2차 배터리 정도 투자만 유지되고 있다. 2018년만 해도 액정표시장치(LCD·6억7700억달러), 메모리(5억400억달러), 배터리(4억6700만달러), 제철·제강업(3억5200만달러) 등 신성장 산업 중심으로 골고루 투자가 이뤄졌다.

그러다 2021년 1분기만 보면 메모리를 제외하면 자동차(5억3600만달러), 배터리(1억4900만달러) 투자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업력, 정보 등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대거 ‘엑소더스’한 지 오래다.



▲중국 상하이시 민항(閔行)구에 위치한 한국 기업의 공장 문이 굳게 닫힌 모습. 현지 업계에 따르면 최근 경영난 악화에 공장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독자제보)
업계 관계자는 “미중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중국 투자를 더 늘릴 수도 없고 계획된 수준에서 설비투자만 진행하고 있는 수준”이라며 “중국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정치·외교 갈등 문제로 기업들이 경제적 판단만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맞는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그나마 이뤄졌던 중국 반도체 투자도 오리무중이라는 점이다. 외신 등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추진하는 520억달러(약 65조원) 규모 반도체 육성 법안에 중국 반도체 투자를 금지하는 이른바 ‘가드레인(guard rail)’ 조항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반도체 제조시설 및 장비에 투자하는 기업에는 세금 공제를 비롯한 각종 보조금과 인센티브를 제공하지만, 대신 10년간 중국 내 공장을 짓거나 증설을 금지하겠다는 얘기다. 우리 기업으로서는 미국이냐 중국이냐 ‘양자택일’을 해야하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여기에 미국이 한국, 일본, 대만을 함께 묶는 ‘칩(chip)4’ 동맹이 가시화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의 운명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중국 현지에 있는 기업들은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 211곳을 대상으로 지난달 1∼28일 실시한 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2분기 현황 BSI는 시황 64, 매출 76으로 전 분기 대비 각각 6포인트(p), 2포인트씩 하락했다. BSI가 100 미만이면 향후 사업 전망이 어둡다고 보는 업체 수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의미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지난달 스페인에서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며 “중국의 대안시장이 필요하고 시장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처럼 3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에 이어 현지진출까지 빨간불이 들어올 정도로 향후 탈(脫) 중국 후폭풍은 더 거셀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 천진시 인근에 위치한 산업용 스프링 제조·생산했던 A업체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봉쇄조치로 경영난을 겪자 지난 2020년말 중국사업을 접었다. 사진은 A업체가 공장 문을 닫은 후 2년가까이 새로 입주한 기업이 없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모습. (사진=독자제보)
하지만 경제계는 박근혜 정부 시절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 조치의 충격을 경험한 터여서 최근 탈 중국론에는 상당히 조심스런 분위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중국에 대해 “아직도 좋든 싫든 큰 시장인 것은 사실”이라며 “이걸 그냥 포기한다고 생각하면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상당히 큰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베트남 등 아세안 시장으로 대안 시장을 찾고는 있지만 여전히 중국이라는 큰 시장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솔직한 목소리를 낸 셈이다.

전문가들도 한중관계는 협력과 경쟁을 해야하는 만큼 미국과 중국 시장을 함께 이용하는 용미용중(用美用中)전략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는 “제2의 한한령 얘기까지 나오면서 기업들도 초긴장 상태로 알고 있다”며 “쉽지는 않겠지만 한중 관계는 협력과 경쟁을 같이 해야 하는 구조를 버릴 수가 없기 때문에 중국 지역에 특화한 산업 클러스트를 활용하는 등 정치·외교와 무관하게 비즈니스를 이어갈 수 있는 틈새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