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중국통' 전병서 "트럼프가 한국에 준 엄청난 기회"
by권소현 기자
2019.05.29 05:20:00
美, 中이 ICT 기술 베끼지 못하게 목 비틀어
트럼프 ICT까지 종속될뻔한 한국 운명 구해줘
서로의 덫에 걸린 G2…美 목표는 금융전쟁
ICT 파트너될 기회…美 제품 불매운동 틈새 노려야
|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이 지난 22일 이데일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중 무역분쟁으로 전통 제조업은 힘들어지겠지만 ICT 부문에서는 기회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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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미·중 무역분쟁이 한국에는 엄청난 기회를 준 겁니다. 중국이 전통 제조업을 장악한 상황에서 한국은 5년, 10년 내에 중국에 완전히 종속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절묘한 시점에 트럼프가 중국의 목을 비튼 거죠.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한국이 중국과 대등하게 협력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게 된 겁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중국통,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겸 경희대 China MBA 객원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전통 제조업은 힘들겠지만 ICT 기술에서까지 종속될뻔했던 한국의 운명을 구해줬다는 것이다.
중국 화웨이에 대해 미국 상무부가 한발 물러섰던 지난 22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에프엔가이드빌딩에서 전 소장을 만났다. 미·중 무역분쟁 관전평을 묻자 그는 “끝내기 쉽지 않은 싸움인데 휴전 시한이 다가오면서 한 평이라도 더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투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전 소장이 말하는 휴전 시한은 바로 6월 주요 20개국(G20) 회담이다. 이때 미·중 무역분쟁은 어떻게든 타결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양국이 지금 치열하게 심리전, 여론전, 법률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타결될 것이라는 전망의 근거는 트럼프 대통령에겐 재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중요한 상황이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985년 미국이 일본과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를 53% 절상시킨 사례를 알고 있는 만큼 절반 양보하고 절반은 지키는 전략을 택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G2 중에서 더 느긋한 쪽은 중국이라고 봤다. 최근 미국 내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경쟁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뒤지는 상황이다. 지난 대선 승리의 발판이었던 러스트밸트에서조차 지지부진하다.
전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하반기로 접어들면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서야 하는데 대외정책 중 중동과 북한 전략에서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전략에서만이라도 성공해야 한다”며 “때문에 마음이 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 주석의 경우 시간을 끌어 바이든 전 부통령으로 주도권이 넘어갈 경우 새로운 전략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바이든은 중국에 대해 적이 아니다(not enemy)라는 입장이어서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우호적”이라고 설명했다.
협상에 도달하긴 하겠지만 지금 미국과 중국 간 관계를 보면 어느 편이 완전히 승리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게 전 소장의 판단이다. 미국은 중국 제조업의 덫에 걸렸고, 중국은 미국 달러의 덫에 걸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 없이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보복관세를 과감하게 부과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수출 대금을 모두 달러로 받으니 미 달러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처지다.
전 소장은 현재의 미·중 무역분쟁을 단순히 무역수지를 두고 다툼을 벌이는 것으로 보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중국에 무역전쟁으로 시비를 걸고, 기술 전쟁으로 목을 조르고, 금융전쟁으로 돈을 털어가겠다는 게 미국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전 소장은 “전쟁의 성격을 파악하려면 출전하는 장수를 봐야 한다”며 “미·중 무역협상 1차 대표단에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 아닌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들어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왜 무역협상에 통상정책을 총괄하는 상무장관이 아니라 재무장관을 보냈을까. 이 전쟁을 무역전쟁이 아닌 금융전쟁으로 몰아가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과거 레이건 행정부에서 USTR 부대표로 일하면서 일본을 굴복시킨 ‘플라자합의’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전 소장은 “과거 일본과 무역전쟁을 벌였을 때에도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가 줄지 않았다”며 “관세를 부과해도 기업들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라이트하이저는 잘 안다”고 설명했다.
결국 미·일 무역분쟁도 환율전쟁으로 번졌고 엔화를 대폭 절상한 플라자합의를 통해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던 일본에 잃어버린 30년을 안겨줬다. 전 소장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최종 목표는 중국의 3조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이라며 “무역은 수단이자 핑계일 뿐이고 실체는 금융전쟁”이라고 짚었다.
실제 미·중 무역전쟁은 환율전쟁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 23일(현지시간) 달러에 대한 자국 통화가치를 절하하는 국가에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일본을 상대했을 때보다는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외환시장이 개방돼 있지 않은데다 일본과 달리 중국은 미국에 국방을 의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1인당 국민소득이나 인구구조로 봤을 때 중국의 맷집이 1985년 일본에 비해서는 10배 더 강하다는 점도 이유로 꼽았다.
과연 미·중 고래 싸움에 한국의 새우등이 터질까. 전 소장은 절호의 기회라고 분석했다.
전 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인데 ICT 기술에 관해 미국은 중국이 어떤 기술도 베끼지도, 사 가지도 못하게 만들었다”며 “지금까지 중국이 기술을 확보해왔던 전제가 무너진 셈”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제 중국은 미국과 협력이 아닌 경쟁하는 관계가 됐고, 승부를 내려면 기술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미국을 제외하면 ICT 부문 최강은 한국이니 트럼프가 만들어준 중국과의 기술협력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게 전 소장의 생각이다.
아울러 중국 특유의 애국심 마케팅에 미국산 IT 기기 점유율이 떨어질 때 이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 소장은 “실제 미·중 무역분쟁이 시작된 작년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중국의 대미수출은 오히려 전년동기대비 4% 가량 늘었고 대미수입은 18% 줄어 대미 무역흑자는 16% 증가했다”며 “중국 당국이 나서지 않아도 중국 내 열혈분자들이 불매운동을 하기 때문에 이 틈새를 노려야 한다”고 말했다. 어부지리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또 한가지. 중국 금융시장에서 돈이 돈을 벌도록 하는 전략도 추천했다. 우리나라도 1992년 금융시장 개방 이후 외국인이 들어와 돈 벌어갔던 것을 지켜봤으니 중국에서 이를 실행해볼 만 하다는 것이다. 전 소장은 “중국의 전통 제조업은 세계 최강으로 규모의 경제에서 당할 재간이 없다”며 “하지만 자본시장 만큼은 모든 시장 중에서 가장 낙후돼 있기 때문에 투자해볼 만 하다”고 말했다.
중국에 진출했다가 실패하고 돌아왔다면, 실패의 원인이 됐던 중국 기업의 주식을 살 것을 권했다. 전 소장은 “연애하다 헤어졌을 때 최고의 복수는 더 잘난 상대와 연애하는 것”이라며 “제조업에서 중국 1등이면 거래소가 무너져도 살아남을 기업이기 때문에 그 회사 주식을 사놓으면 최고의 복수가 되는 셈”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