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편지] 77. 런던에서 만난 중세시대
by한정선 기자
2018.08.23 06:00:00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등으로 영국 내 정치 경제 혼란은 여전하지만 이런 불확실성에 따른 파운드화 약세는 영국을 여행하려는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 1파운드는 1500원 정도에 살 수 있습니다. 3년 전만 해도 1파운당 1900원에 육박하던 것과 비교하면 많이 저렴해졌죠.
런던은 관광 명소가 비교적 런던 중심을 가르는 템스 강 변에 몰려 있어 강변을 여유롭게 걸어 다니다 보면 영국 국회의사당(빅벤), 소머셋하우스, 세인트폴 성당, 타워 브리지, 타워오브런던 등 역사적인 스토리가 가득한 수백 년 된 건축물들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내부에 들어가려면 입장료 등을 내야 하지만 겉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운치 있는 건축물들이 즐비해 있죠. 템스강물은 회색빛이고 깨끗하지는 않지만 수백 년 된 건축물들과 현대 건물들이 조화를 이뤄 볼거리가 많은 강변을 따라 걷는 것은 런던에 여행 오면 한 번쯤은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런던 여행을 하는 추세라 대부분 주요 관광지들과 런던을 올 경우 경험해 볼 것들에 대한 정보가 책이나 온라인 등에 가득합니다. 오늘은 비교적 덜 알려진 런던 명소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템스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The temple’(더 템플)이라고 쓰여진 이정표를 볼 수 있습니다. 더 템플은 플릿 스트리트에 있는데 크게 법학원인 이너 템플, 미들 템플, 교회인 템플 처치로 구성돼 있습니다.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기독교인들과 이슬람 교인들이 예루살렘 성지를 두고 싸웠던 십자군 원정이 계속됐을 때 예루살렘에 다녀오는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도승과 군사들이 연합한 템플 기사단이 결성됐는데 이 템플 지역이 그들의 본부 역할을 했었죠.
템플 기사단은 기독교의 인정을 받은 이후 왕과 제후 등 유력 기독교인들이 많은 땅과 돈을 기부하면서 세력을 크게 키웠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프랑스 필리프 4세가 그들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우상숭배 등의 죄를 씌우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죠.
이 과정에서 템플 지역은 십자군 3개 기사단 중 한 곳인 성 요한 기사단에 넘어가게 되는데 경제에 밝은 성 요한 기사단은 이 지역 건물들을 변호사와 법학도들에게 빌려주는 등 부동산 사업을 활발하게 했습니다.
이 같은 역사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템플 지역은 변호사협회, 법률 연수원, 법률 관련 사무실 등이 들어선 법률 거리로 명성이 높습니다.
런던에서 영국중앙은행이 있는 시티오브런던 지역이 경제금융 중심지, 국회의사당 등이 있는 웨스트민스터가 정치 중심지로 알려졌다면 템플 지역은 홀번 지역과 함께 법의 중심지로 통합니다.
템플 지역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중세시대로 걸어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길을 따라 쭉 올라와서 꺾어지는 곳에 이너 템플 가든이 있는데요. 안으로 들어가 보면 작지만 예쁜 정원이 펼쳐집니다. 곳곳에 벤치가 마련돼 있어 잠시 앉아 즐기기도 좋습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런던의 관광지들을 피해 조용한 중세시대 분위기를 감상해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입니다.
템플에 있는 건축물들은 지붕이 있는 긴 복도 ‘회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죠. 템플 지역은 미국 배우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미션 임파서블5: 로그네이션’에서 크루즈가 악당들과 싸울 때 배경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템플지역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면 템플 처치가 나오는데요. 독특한 건축 모양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템플 교회는 1185년에 지어졌는데 지붕이 영국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원형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가 묻히고 부활한 예루살렘 성 분묘 교회의 양식을 따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교회당으로 들어가면 바닥에 기사들의 무덤이 있는데 조금 으스스하긴 해도 이곳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