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메이커]"성공에 취했을 때 위기 시작"‥구조조정 변호사의 충고

by장순원 기자
2018.03.26 05:00:00

태평양 구조조정팀 박현욱·박진홍 변호사 인터뷰
"한 때 잘나가던 기업도 위기 대비 못해 순식간 추락"
"아프지만 구조조정은 불가피‥고통 최소화가 핵심"
회원제 골프장 자문 늘어‥"회원 큰 욕심이 되레 화"

박현욱 변호사가 지난 23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태평양 기업구조조정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법무법인 태평양)
[이데일리 장순원 김무연 기자] “법원에서 회생절차를 밟는 회사들은 모두 한때 잘 나가던 회사들이었습니다. 성공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 순간 마음이 풀리는 경우가 많아요. 회사가 가장 밝고 빛나는 순간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죠.”

지난 23일 서울 강남 법무법인 태평양 사무실에서 만난 구조조정 자문 전문변호사 박현욱 변호사(팀장)와 박진홍 변호사는 “기업의 성공은 영원할 수 없다”면서 기업들이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이 위기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태평양은 우리나라 기업 구조조정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 로펌이다. 1980년대부터 한보주택·고려원양·우성건설그룹 등의 회사정리 사건을 도맡으며 주목을 받았고, 외환위기(IMF) 직후인 1999년 대형 로펌 중 처음으로 기업 구조조정 전담팀을 꾸렸다. 현재 박 팀장과 박진홍 변호사를 포함해 약 20명의 전문변호사가 발로 뛰며 한일합섬·대우자동차·대우조선·하이닉스·성동조선을 포함해 수많은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을 함께 했다.

박현욱 변호사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성공이 실패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면서 “법정관리 회사를 지켜보면서 잘 나갈 때 다음 먹거리를 준비하고 유동성도 쌓아둬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기존 성공 방정식에 취해 혁신을 게을리하면서 서서히 도태되는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는 “구조조정절차의 문을 두드리는 곳은 이해관계인이 많은 큰 회사인데 한때 그 분야에서 가장 잘 나가던 회사였다”면서 “삼성그룹이 좋은 실적에도 항상 위기에 대비하는 이유는 이런 생리를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성장했다 쇠퇴하는 과정에서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같은 구조조정은 재도약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성공에 취해 야성을 잃은 기업이 살을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본연의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도 조선이나 해운, 자동차 산업을 포함한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의 과감한 구조조정을 주문하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사업장의 재편과 대규모 인력감축이 동반돼 쉽지 않은 작업이기도 하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반발하는 일이 부지기수인데다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커 정치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박 변호사는 가장 기억에 남은 딜로 제너럴모터스(GM)가 외환위기 직후 대우차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매각 측인 산업은행과 대우차 쪽을 자문한 일을 꼽았다. 당시 외부투자자를 구하지 못하면 대우차가 공중분해될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GM과 협상 과정에서 속이 상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악조건 속에서 협상을 이끌어갔고 결과적으로 GM이 대우차를 인수해 최악의 위기를 넘기는 데 일조했다.

박 변호사는 “20년 전을 회상하면 정말 힘든 상황이 많았다”면서 “요즘에도 조선이나 해운을 포함해 어려운 기업이 많은데 하청업체들도 힘든 고비를 겪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조조정은 어떤 산업이나 국가든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면서 “하나하나 사람과 엮인 문제이다 보니 최대한 고통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18일 서울 강남에 있는 법무법인 태평양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진홍 변호사가 골프클럽Q안성 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법무법인 태평양)
태평양 구조조정팀이 최근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가 골프장이다. 회원제를 중심으로 국내 골프장 사업이 대변혁기에 접어들면서 M&A가 활발하게 진행돼서다. 그간 회원제 골프장은 대부분 회원의 입회보증금(회원권)을 받아 땅값과 공사비 등으로 충당해왔다. 입회금은 골프장 운영회사가 회원권을 분양하면서 통상 5년 후에 원금을 되돌려주기로 한 일종의 빚인데, 회원제 골프장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곳이 속출했고, 회원과 골프장 운영회사나 채권자 사이의 분쟁이 큰 폭으로 늘었다.

특히 태평양은 골프클럽 Q안성 매각자문을 하면서 골프장 딜의 한 획을 그은 곳으로 유명하다. 회원제 골프장의 입회금 전액 반환을 보장하는 체육시설 및 이용에 관한 법률보다 기업회생(통합도산법)이 먼저라는 대법원 판례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치밀한 법리검토 과정을 통해 새로운 선례를 만들었고 이 판결 이후 골프장의 인수합병(M&A) 과정에 숨통이 트였다.

이 소송 과정에 참여한 박진홍 변호사는 “Q안성 재판 즉시항고나 재항고 기록을 보면 골프장 매각에서 생각할 웬만한 이슈 다 나왔다”면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까지 수년이 걸렸지만, 결과적으로 중요한 기준을 세운 셈”이라고 말했다.

최근 법정관리 골프장의 M&A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간 잡음이 불거지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질문을 하자 박현욱 변호사는 “회원들에게 헛된 희망을 불어넣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타짜 비슷한 사람들이 시장을 흐리는 경우가 있다”면서 “회원권의 매입 가격만 생각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욕심부리다 회생과정에서 뒤틀리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봤다”고 했다. 박진홍 변호사도 “골프장 회생 과정에서는 비상대책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사심 없이 공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법률자문을 받아 회원에게 정확하게 알려주는 게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박현욱(51) 변호사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5년 법무법인 태평양에 합류한 뒤 20년 가까이 기업회생, 구조조정 관련 업무를 수행했으며 현재 태평양 구조조정팀 팀장을 맡고 있다. 대한조선·쌍용건설 회생 신청 및 인가 자문, 골프클럽 안성Q 매각 자문 등을 담당했다.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한 박진홍(43) 변호사는 제 4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2005년부터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기업구조조정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웅진홀딩스·대우로지스틱스 등의 회생절차 개시를 도왔고 극동건설·대우자동차 등의 회생 및 파산 관련 자문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