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당 7400만원 더?..추가분담금 덫에 빠진 재건축시장

by이승현 기자
2016.01.22 05:30:00

신길11구역 총 210억원 더 부담해야
시공사 삼성물산 "돈 내야 입주 가능"
날벼락 맞은 조합원 한파속 연일 시위
시장침체로 일반분양 수익창출 난항
조합원 '무상지분율 낮추기'로 연결
둔촌주공 등 갈등 빚는 단지 더 늘듯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서울 영등포구 신길뉴타운 11구역에 들어선 재개발 아파트 ‘영등포 래미안 프레비뉴’. 공사를 끝내고 한창 입주할 기간이지만 이삿집 차량은 보이지 않고 엄동설한 속에 조합원들의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추가분담금 문제로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조합원들의 입주를 막고 있어서다.

조합에 따르면 시공사가 조합원들에게 추가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집 열쇠를 줄 수 없다고 해 입주 기간인데도 집들이를 못하고 있다. 시공사가 요구하는 추가분담금은 총 210억원. 조합원 1인당 평균 7400만원 꼴이다. 심지어 1억원을 추가로 내야 하는 조합원도 있단다. 조합원 이모씨는 “갑자기 7000만원이 넘는 큰 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냐”며 “당장 갈 데가 없어 이삿짐은 창고에 보관해 놓고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친척집을 전전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재건축·재개발 단지들이 추가분담금의 덫에 빠졌다. 최근 들어 추가분담금 놓고 조합과 시공사 간, 조합과 조합원 간 갈등을 빚는 단지가 늘고 있다. 주택시장 침체에다 향후 부동산 경기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그동안 잠복해 있던 추가분담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조합원 추가분담금을 놓고 조합과 시공사 간, 조합과 조합원 간 갈등을 빚는 재건축·재개발 단지가 늘고 있다. 주택시장 침체하면서 잠복해 있던 조합원 분담금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른 단지도 적지 않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아파트 [이데일리 DB]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아파트의 경우 2010년 현대건설·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이 조합원에게 164%의 무상지분율을 제시해 시공권을 따냈다. 그런데 지난해 말 조합원에게 최고 32%포인트 낮은 132~158%로 통보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무상지분율이 낮아지면 조합원이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집 크기가 줄어 들기 때문에 분담금이 늘어나게 된다. 이 사업지의 경우 무상지분율이 164%일 때는 전용면적 52㎡형 소유자가 재건축 후 전용 84㎡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면 약 5823만원을 내면 되지만, 무상지분율이 132%로 내려가면 1억 68만원으로 부담금이 2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일부 조합원들은 조합 집행부 해임과 시공사 변경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합원은 “조합 집행부와 시공사가 조합원들에게 사전 동의 없이 사업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며 “지금 이 조건으로는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과천주공6단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12년 시공사로 선정된 GS건설은 조합과 가계약 당시 조합원 지분을 150%로 정했으나 지난해 말 132%로 낮추겠다고 조합 측에 통보했다. 전용 66㎡짜리 아파트를 가진 조합원은 기존 지분율대로라면 99㎡형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었지만 132%로 낮아지면 7000만원 이상 분담금을 내야 한다. 인근 K공인 관계자는 “주택시장이 급랭하고 향후 집값 상승 기대감도 크지 않다보니 그동안 숨어 있던 추가분담금 문제가 터져 나온 것 같다”며 “시장 상황에 따라 과천주공6단지 재건축 사업이 좌초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신길11구역에서 대규모 추가분담금이 발생한 것 역시 시장 상황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재개발 사업이 지연되면서 크게 불어난 추가분담금 문제가 시장이 침체한 입주 시기에 불거지면서 시공사와 조합원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갈등을 해소할 가장 좋은 방법은 일반분양가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시장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아서다.

GS건설이 과천주공6단지 조합 측에 제시한 안을 보면 재건축아파트의 일반분양가를 3.3㎡당 2710만원 이상으로 정하면 조합원 무상지분율을 147%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일반분양가를 2560만원으로 낮추면 무상지분율은 140%, 2410만원으로 낮출 경우 132%로 낮아지게 된다. 일반분양가에 따라 조합원 부담이 달라지게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조합이 일반분양가를 마냥 올려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금리 인상 가능성 및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 등으로 주택시장이 당분간 얼어붙을 가능성이 크다”며 “조합이 일반분양가를 높게 책정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추가분담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단지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조합의 불합리한 운영 방식과 비용 관리, 내부 갈등 등으로 사업 추진이 늦어지면서 비용이 크게 불어난 단지가 적지 않다”며 “갈등이 확산되면 재산상의 손실은 물론 입주 지연 등 사회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만큼 공적 영역의 적절한 관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