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Giga KOREA…10배 더 빨라질 준비됐습니까"

by류준영 기자
2012.10.28 10:00:00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
"특허戰 계기 지식재산권 인정하는 풍토 정착돼야"
"내년 '기가코리아' 본격시동..기가시대 먼저 간다"

[이데일리 류준영 기자]“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변화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뉴-리더십(New Leadership)은 오직 기술력뿐이다”

삼성과 애플이 사운을 걸고 벌이는 글로벌 특허 전쟁을 누구보다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다. 우리나라 정보기술(IT)·과학기술계 원로이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최고사령탑인 김흥남 원장(55)이다.

지식재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그다. 김 원장은 “미국 재판부가 삼성전자에게 특허권 패소에 따른 손해배상금 1조원을 물리고, 우리나라는 애플에게 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며 “벌금액만 보더라도 미국과 한국의 지식재산권에 대한 가치평가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지식재산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선전국처럼 지식재산권을 인정하는 문화와 제도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게 김 원장의 주장이다.

김 원장은 같은 맥락에서 IT업계에 열병 처럼 번지고 있는 과도한 기업 사냥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기술개발을 터부시하는 무드로 전염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최근 일본 소프트뱅크가 미국 3위 무선통신회사인 스프린트를 1조 5709억엔(약 22조원)에 인수하는 등 국내외 IT업체들의 행보는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기술 강국’ 일본을 보더라도 올들어 9월까지 외국 기업 인수합병(M&A) 건수가 총 364건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기업 M&A 컨설팅사 레코프는 전한다.

첨단 기술시장이 특허전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기업간 무차별 M&A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것. 이런 움직임은 비단 전자산업뿐만 아니라 콘텐츠, 게임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머니 파워’가 우선시되는 흐름이 기술 혁신의 발목을 잡는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게 김 원장의 생각이다.

김 원장은 “열매(기술) 따먹는 것만 치중하다 보면 나중에 열매가 없을 수도 있고. 외국 과일을 수입해서 먹어야 할 텐데, 처음에는 싸게 먹을 수 있어도 나중에는 과일값이 오르거나 농장주가 판매를 거부해 난처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총성없는 신기술 전장에 기업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연구기관간 경쟁도 치열하다. ETRI가 특허권에 취약한 기업들의 파수꾼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어와 영어를 자동통역해주는 스마트기기용 애플리케이션 ‘지니톡’은 이 같은 자부심과 혁신의 관성(慣性)이 낳은 알찬 열매다.

애플 아이폰에 탑재된 음성인식 비서 기능인 ‘시리’는 미국 정부가 2500억원을 들여 완성한 프로젝트다. 이 기술을 벤처기업에 이전하고, 애플이 이를 인수하면서 시리의 가치는 현재 25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ETRI는 시리 대항마로 ‘지니톡’을 지난 17일 선보였다. 실시간 자동 번역 기능은 2008년 개발 초기 참여했던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이 자체 개발에 나서기도 했지만 결국 포기했던 것이다. 지니톡은 ETRI가 4년여에 걸쳐 지경부 소프트웨어 연구·개발(R&D)과제로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지니톡 원천기술(음성인식-자동번역-음성합성 알고리즘)은 이보다 훨씬 앞선 1997년 IMF가 터졌을 때부터 시작됐다. 김 원장은 “불확실한 경제사정으로 기술투자가 여의치 않더라도 혁신의 관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가올 2020년 대한민국 미래상의 큰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 김 원장에게 내년은 흥분과 기대, 두려움이 동시에 교차한다. 스마트 코리아 실현을 위한 ‘기가코리아(Giga KOREA)’ 프로젝트가 본격적인 시동을 거는 원년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 유무선 네트워크망을 기가(Gbps)급 이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모든 인간과 사물이 실시간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초연결(Hyper Connectivity)시대를 대비한 스마트 IT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2020년까지 약 5500억원이 투입된다. 김 원장은 “롱텀에볼루션(LTE)보다 10배 더 빠른 5세대로 갈 채비를 지금부터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콘텐츠와 플랫폼, 단말기, 소프트웨어가 기가급 네트워크에 맞춰 균형 있게 개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요소들은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한국콘텐츠문화원 등 각 부처 별로 쪼개져 있다. 예전부터 IT기술의 총체적 구상을 맡는 컨트롤센터의 필요성이 부각돼 왔지만 현실적 여건상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그러므로 김 원장은 “부처간 협업할 수 있는 알맞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견해를 내놨다.

김 원장은 “2018년 동계올림픽 때 꽃을 피우게 될 기가코리아는 메가시대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기가시대를 소개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며, 한국의 기가 솔루션과 장비가 수출길로 이어지는 기회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볼주립대학교 전산학 석사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전산학 박사 취득 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영학 자격증을 수료했다. 이후 1983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시스템 공학연구소 연구원으로 15년간 활동하다 1998년 내장형 소프트웨어(SW) 연구팀 팀장으로 ETRI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이후 임베디드 SW기술센터 센터장, 혁신위원회 위원장 등 중책을 맡아오며 ETRI 연구활동의 나침반 역할을 했으며, 2009년 ETRI 원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