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석유공사 `신의 축복`을 수확하다

by박기용 기자
2010.11.21 11:00:00

자회사 하베스트, 석유공사 생산량의 25% 담당
앨버타 93개 유전에서 하루 5만배럴 원유 생산
3년 뒤 석유산업의 미래 `오일샌드` 생산 돌입

[캘거리=이데일리 박기용 기자] 사방 지평선까지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벌판. 군데군데 온몸에 붉고 검은 칠을 한 `서커 로드 펌프`(빨대 펌프, Sucker rod pump)들이 땅속 깊은 곳에서 느릿느릿 원유를 뽑아내고 있다. 일명 메뚜기라 불리는 펌프들은 느린 움직임에 속도도 제각각이다.

▲ 벨스힐 레이크(Bellshill Lake) 유전 현장의 `메뚜기`들
멀리 간선도로로 이따금 지나는 차들을 제외하면 온통 하얀 눈뿐인 주변 벌판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사물은 이 `메뚜기`들뿐이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캐나다 앨버타의 11월 날씨 탓인지, 풍경이 스산하기만 하다. 앨버타는 인근 로키 산맥의 영향으로 원유가 집적된 배사구조가 형성돼 있다.

"50년이 넘다 보니 생산성이 떨어진 상탭니다. 다만 기존의 투자비는 모두 회수했죠. 현재 이 지역은 새로 시추공을 뚫지 않고 기존의 웰(유정, well)들을 유지한 채 생산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육상생산의 모습이지요"

지난 16일 오전 10시(현지시각) 한국석유공사의 캐나다 자회사인 하베스트(Harvest)의 벨스힐 레이크(Bellshill Lake) 유전 현장 생산총책임을 맡은 케빈 에띠(Kevin Etty, )가 시찰단 일행에게 현장의 개요를 설명했다. 이곳엔 그를 포함해 십여 명의 직원이 상주하며 유정의 이상 유무와 하루 생산량 등을 점검하고 있다.



▲ 벨스힐 레이크 유전 현장의 생산총책임을 맡고 있는 케빈 에띠(Kevin Etty)
기자를 포함, 이날 벨스힐 레이크 현장을 찾은 시찰단은 하베스트 본사가 위치한 캘거리에서 버스와 전세기를 갈아타고 2시간30분 만에 이곳에 도착했다. 캘거리에서 차도로 330킬로미터가량, 직선거리로 26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벨스힐 레이크 현장의 전체 면적은 30제곱킬로미터(㎢). 서울 여의도(8.48㎢)의 3.5배에 달하는 황량한 벌판에 392개의 유정이 흩어져 있다. 유정마다 하나씩 펌프가 딸려 있어 최소 400미터, 최고 3500미터의 깊이에서 하루 2200배럴의 원유를 퍼올리고 있었다.

이들 유정 중 아직 생산에 들어가지 않은 12곳엔 물이 주입되고 있었다. 물은 지하의 기름을 띄우고 기름이 빠져나간 공간을 채워넣는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간혹 `메뚜기`들이 유정의 생산량에 맞지 않는 빠른 속도로 움직여 원유가 아닌 물을 뽑아내기도 한다.

에띠는 "서커 로드는 분당 6번에서 10번의 속도로 움직인다"면서 "저류층(원유나 천연 가스가 지하에 모여 쌓여 있는 층)의 질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정도는 물이 섞여 있는 편이다. 물은 중력으로 자연스레 분리되지만, 가스의 경우 황이 섞여 있기도 해 탈황시설을 거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 현장 직원이 서커 로드 펌프(Sucker rod pump)를 점검 중인 모습
하베스트는 이곳 벨스힐 레이크를 비롯, 앨버타를 중심으로 총 93개 유전에서 하루 5만배럴 이상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 석유공사가 인수한 영국의 다나를 포함하는 경우, 석유공사 전체 생산량(약 19만배럴)의 4분의 1을 하베스트가 맡고 있는 셈이다.





약 한 시간 반가량 벨스힐 레이크의 현장을 둘러본 시찰단 일행은 다시 인근 소도시 캠로즈(Camrose)의 공항으로 이동해 전세기로 1시간을 날아 에드먼턴 북쪽 슬래이브 레이크(Slave Lake)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다시 두 대의 SUV 차량으로 갈아탄 일행은 2시간을 달려 하베스트의 또 다른 현장인 `레드 어스`(Red earth)에 다다를 수 있었다. 캘거리에서 차도로 약 720킬로미터, 직선거리로 62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벨스힐 레이크와 달리 사방이 온통 침엽수림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선 시추가 한창이었다.

"현재 1970미터 가량 진행했습니다. 수직으로 900미터 내려간 뒤 다시 1000미터를 수평으로 나아갔습니다. 작업한 지는 2주 정도 지났죠"

▲ 하베스트의 레드 어스(Red earth) 현장. 30미터 높이의 시추기가 지하 2000미터 깊이의 시추공을 뚫고 있다
캘거리에서부터 일행을 인솔한 하베스트의 임종찬 부장이 현장 직원의 설명을 전했다. 하베스트엔 CFO(재무책임)를 맡은 손경락 소장을 비롯해 10여 명의 석유공사 직원이 파견 나와있다. 임 부장은 "저류층을 찾아 가로로 빨대를 꽂아야 더욱 효율적으로 원유를 빼낼 수 있다"며 시추공을 곡선으로 뚫는 이유를 설명했다.

임 부장의 안내를 받은 일행은 너덧 명씩 짝을 지어 지상 30미터 높이의 시추기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한쪽 끝에 비트(드릴 날)를 장착한 20미터 길이의 파이프가 연신 굉음을 내며 땅속으로 박혀 들어가고 있었다. 반대쪽에선 파이프 대신 퍼올려 진 회백색의 흙들이 물과 섞여 걸쭉한 진창이 돼 흘렀다. 기계가 내뿜는 열기와 땅속 파이프의 고정을 위해 사용한다는 시멘트 특유의 냄새가 섞여 역한 비린내가 났다.



하베스트는 이곳 레드 어스 지역에 시추작업을 위한 `리그`(작업반)를 5개 운영하고 있다. 올겨울 동안 총 37개의 시추공을 뚫는 것을 목표로, 현재 9번째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여름이 되면 일대가 온통 늪지로 변하는 통에 시추작업은 겨울에만 진행한다.

▲ 시추기에 의해 지하에 매설되는 파이프들. 원유 생산시 시추공의 지지대 역할을 한다
임 부장은 "3000만~4000만달러가 소요되는 중동 지역과 달리 캐나다 앨버타에선 100만달러의 비용으로 2주 만에 작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시추 후 파이프라인을 연결하면 두세 달 후부터 생산할 수 있다. 하베스트는 현재 레드 어스에서 하루 3400배럴의 원유를 생산 중이다. 앞서 벨스힐 레이크보다 1200배럴이 많다.

"하베스트가 100% 지분을 가진 오일샌드 광구 `블랙 골드` 현장은 한국의 GS건설에 의해 이제 막 착공이 시작된 단계입니다. 오는 2013년 첫 생산을 시작할 무렵이면 벨스힐 레이크나 레드 어스처럼 현장을 둘러보실 수 있을 겁니다"

레드 어스에서 다시 캘거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임 부장은 캐나다 석유산업의 미래인 오일샌드를 강조했다. 캐나다는 베네수엘라와 더불어 오일샌드, 셰일가스 같은 이른바 `
▲ 모래와 기름이 섞인 `오일샌드` 샘플. 뜨거운 증기를 이용해 원유만 뽑아낸다
비전통 원유`를 가장 많이 매장하고 있는 나라다. 비전통 원유를 포함하면 캐나다의 원유 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가 된다. 지난해 말 석유공사가 하베스트를 인수한 데엔 이 같은 장기포석이 깔렸었다.

캐나다는 오는 2015년 하루 329만배럴, 2025년 434만배럴의 원유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캐나다가 로키 산맥으로부터 받은 신의 축복은 오일샌드와 더불어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석유공사가 하베스트를 통해 이 축복의 일부를 `수확`(havest)해 감은 물론이다. 캐나다 기업에서 한국 기업으로 변모한 지 만 1년, 하베스트는 지금 이 수확을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