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세대·신20대 탐험] ⑦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

by조선일보 기자
2005.05.21 10:37:40

학연·지연보다 "넷연"… 우린 메신저로 통한다
20대 비서관 메신저 보면 국회가 한눈에
"게임 혈맹 모여라"엔 일도 제쳐두고 접속
온라인 미팅 사이트서 "이상형 찾기" 북적

[조선일보 제공] 한국 정치의 장터인 서울 여의도 국회. 요즘 이곳의 물정을 알려면 20대 비서관·인턴들의 인터넷 메신저를 귀동냥해야 한다. 작년 말부터 9급 비서관으로 의원회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은혜(27·가명)씨. 그녀의 컴퓨터 메신저 프로그램은 출근과 동시에 ‘로그온’ 된다. 등록된 대화 상대는 90여명. 이 중 ‘국회’ 그룹은 15명이다. 상대방이 컴퓨터를 켜고 있으면 언제든지 클릭 한 번으로 대화가 가능하다. ‘과거 모 여성 국회의원이 호스트바를 다녔다더라’ ‘A 여비서가 자기 방 의원과 바람났다더라’는 뒷얘기들도 순식간에 메신저를 통해 Na세대 사이에 퍼져 나간다. “대학 물 먹고 와서 보좌관 커피까지 타야 하냐. 우리 할마시 커피 타는 것도 성질나는데.” “보좌관 쟤들은 지가 국회의원인 줄 알아.” 그녀의 메신저 대화창에선 누구라도 난도질 당한다. 이들에게 남성 의원은 ‘영감’, 여성 의원은 ‘할마시’로 통한다. 김씨는 한나라당 소속이나 열린우리당·민주당 소속 대화 상대도 적지 않다. 김씨는 “다른 당 비서관들도 온라인에서 만나면 그냥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의원들이 같은 상임위일 경우 비서관들끼리 당에 관계없이 접속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들의 메신저 망에선 ‘우리 의원 발의법안에 니네 영감 도장받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법안 초안들과 각종 서류도 부지런히 오간다. Na세대들에게 인터넷은 ‘혁명’ 이상이다. 인터넷을 통해 일하고, 대화하고, 놀고, 쇼핑하고, 공부하고, 사랑한다. 이들에겐 오프라인에서 맺은 인연(因緣)만큼이나 온라인에서 맺은 ‘넷연(Net緣)’도 중요하다. 18일 오후 10시쯤, 김현준(20·중앙대 컴퓨터공학과)씨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야, 우리 편이 부족하다. 당장 다 들어와!” 온라인게임 ‘길드워’ 혈맹장(血盟將)의 급전이었다. 같은 편 멤버들끼리 힘을 합쳐 적과 싸우는 온라인게임을 위해 동맹을 맺은 사람들을 가리켜 ‘혈맹’이라고 한다. 혈맹장의 집합 명령이 떨어지면 하던 일도 팽개치고 온라인에 접속한다. 김씨의 혈맹은 30여명이다. 혈맹은 10명 이하에서부터 100명이 넘는 대규모도 있다. 김씨는 “같은 혈맹에 소속되면 운명공동체가 되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나도 수백번 만난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들은 오프라인에서 만나 술도 마시고, 게임 전략회의도 한다. 김씨는 “게임에 빠져있는 20대들에겐 고교 동문회, 향우회, 대학의 동아리보다 온라인상 혈맹이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Na세대의 남녀관계도 온라인에서 무르익고 있다. 온라인 미팅 사이트는 2000년 이후 급증했다. 최근엔 온라인 매칭 사이트가 인기다. 나이·학교·직업·체형·성격·취미 등 원하는 조건을 입력하면 그에 맞는 이성이 ‘짠’ 하고 나타난다. 미팅전문사이트 ‘웨피’에선 궁합까지 맞춰준다. 2000년 개설된 온라인 결혼정보사이트 ‘세이큐피드’ 회원은 20만명, 이 중 90%가 20대 회원이다. 벌써 252명의 부부를 배출했다. 이 사이트엔 커플이 맺어지면 바람을 못 피우도록 제한하는 기능도 있다. 회원 김모(27)씨는 “좋은 사람 만나려면 내 정보를 많이 공개할수록 좋다. 인터넷에 내 사진 올린다고 쑥스러운 건 없다”고 했다. Na세대들의 넷연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엄묘섭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온라인을 통한 넷연은 의사소통이 효율적이고 기존의 학연·지연을 뛰어 넘는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온라인을 통한 인간관계는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관계로 흘러 인간관계를 좁히는 결과도 낳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