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24.08.13 05:00:00
이달 초 인천 서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벤츠 전기차 배터리에서 발생한 화재가 불러일으킨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전국의 아파트에서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출입 금지 여부를 놓고 주민 간 갈등이 잇따르고 있는가 하면 지하주차장의 충전 시설 사용을 놓고 옥신각신하는 일도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구매 계획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소비자가 크게 늘며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장기화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한 전기차 직거래 중고 시장에는 이달 들어 종전의 두 배에 가까운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
전기차 포비아 확산은 인천 전기차 화재의 피해 현장이 워낙 끔찍했기 때문이다. 진화에 8시간이나 걸리면서 같이 주차된 수십 대의 차량이 전소돼 뼈대만 남은 장면이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전파됐다. 사태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업계와 지방자치단체, 정부가 일제히 대응에 나섰다. 현대자동차는 자사 전기차 제품에 장착되는 배터리의 제조사 정보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서울시는 용량의 90% 이하로 충전된 전기차만 지하주차장에 출입하도록 권고했다. 정부는 어제 관계부처 긴급회의를 연 것을 시작으로 연쇄 대책회의를 거쳐 다음 달 초 종합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하지만 지금 전국을 덮친 전기차 포비아는 과도한 감이 적지 않다. 통계를 보면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유달리 화재가 자주 발생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화재 사고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전기차나 내연기관차나 마찬가지다. 다만 전기차 화재 대응 인프라가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전기차 전용 방화 및 소화 장비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고, 지하주차장에 의존하는 아파트가 수두룩한 국내 주택 문화가 전기차 화재 위험을 가중시키지만 사전 대비가 부족했다.
전기차 포비아를 조속히 잠재우지 않으면 수요 위축으로 국내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가 흔들리고 피해도 다방면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정부와 자동차업계는 소비자들이 지나친 불안을 걷어낼 수 있도록 촘촘하고 완벽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내수 기반이 무너지면 국내 전기차 업계가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키워나가는 데 큰 차질을 빚을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