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투자레슨]'매그니피센트 7'의 독주와 쏠림

by포럼사무국 기자
2024.07.11 05:00:00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한국과 미국증시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라는 말이 흔히 쓰이고 있지만, 실은 한미 증시의 디커플링이 아니라 ‘미국 빅테크 주식들과 기타 종목들의 탈동조화’가 요즘 글로벌 증시에 대한 적확한 묘사이다. 미국 증시의 대표적 우량주 30 종목들로 구성된 다우지수의 2024년 등락률(~7월8일)은 4.4%로, 한국 코스피의 7.6% 상승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빅테크 기업들의 본산인 나스닥지수는 22.6%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고, 주요 기술주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S&P500지수도 16.8%나 상승했다. 다만 S&P500지수를 구성하고 있는 500개 종목들 중 올해 주가가 하락한 종목이 211개에 달하고 있어, S&P500지수 내에서도 주가 차별화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미국증시에서 중소형주를 대표하는 러셀2000지수는 올해 0.6% 상승에 그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잘나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종목 나름인 셈이다.

소수의 종목들이 미국증시의 강세를 이끌고 있다. ‘매그니피센트 7’(Magnificient 7)으로 불리는 7개 종목이 그들인데, 시가총액 3조 달러 반열에 오른 마이크로소프트(2024년 등락률 +23.9%), 애플(+18.3%), 엔비디아(+158.8%) 등이 강세를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시가총액 2조 달러대인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35.3%)과 아마존(+31.1%)도 쉼 없는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 밖에 메타가 49.3% 상승했고, 부진의 늪에서 헤매던 테슬라도 7월 들어 힘을 내면서 2024년 수익률을 플러스(+1.8%)로 반전시켰다. 미국 증시를 대표하는 S&P500지수의 전체 시가총액 중 ‘매그니피센트 7’ 종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34.2%까지 높아졌다.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특정 종목들의 독주가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 시대의 혁신적 기술이 가진 배타성 때문이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은 과거의 기술혁신보다 경제 전반의 파이를 키우는 힘은 약하다. 1차 산업혁명은 동력기관이라는 새로운 발명품이 존재했고, 2차 산업혁명은 전기, 3차 산업혁명은 PC와 인터넷이라는 물리적 실체를 가진 신기술이 등장했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컴퓨팅 기술을 바탕으로 한 극단적 효율화로, 3차 산업혁명의 진화된 형태로 볼 수 있다. 막대한 데이터를 인지·측정(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매개)해서 저장(클라우드)한 후 해석(빅데이터)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4차 산업혁명을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인공지능(AI)도 매우 큰 변화를 가져올 테지만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4차 산업혁명에서 창출되는 수요는 기존의 비효율적인 플레이어들의 파이를 잠식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아마존은 기존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쇠락을 등에 업고 약진했다. 아마존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면 기존 플레이어들이 몰락해 ‘아마존 공포지수’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또한 구글과 메타는 기존 언론사들의 광고 수입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한국에서도 쿠팡의 성장은 오프라인 대형 유통업체들의 손익을 적자로 반전시켰다. 신기술이 파이 자체를 키우면 ‘윈윈’이 될 수 있지만, 4차 산업혁명은 기존 파이가 더 효율적인 플레이어들로 넘어가는 ‘제로섬 게임’의 성격이 강하다. AI가 극강의 효율을 통해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겠지만 이 과정에서도 기존 플레이어들의 도태는 불가피할 것이다.

소수 빅테크 기업들과 기타 종목군 주가의 극심한 차별화는 우리 시대의 기술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가치투자자들에게 매우 도전적인 환경을 만들고 있다. 워런 버핏이 ‘성장은 가치를 구성하고 있는 한 부분’이라고 말한 것처럼 가치투자의 개념으로 빅테크 주식을 사지 못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가치투자자들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인 ‘안전 마진’을 고려하면 빅테크 주식들에 선뜻 매수 주문을 내긴 어려울 것이다. 빅테크 이외 종목들에서도 가치와 가격의 괴리를 고려해 투자할 수 있는 대안은 많다. 다만 요즘과 같은 투자 환경에서는 ‘가치 함정(Value Trap)’에 대한 깊은 고려가 필요하다. 싸 보이는 주식의 밸류에이션이 사실은 저평가돼 있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비즈니스 사이클이 작동할 경우 저평가된 종목을 사서 기다리면 밸류에이션 정상화 과정에서 이익을 낼 수 있지만, 빅테크 기업에 밀린 좌초기업들은 저평가가 고착화할 수도 있다. 밸류에이션이 높은 빅테크 종목들은 계속 올라가고, 싸 보이는 소외주들의 저평가가 더 깊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가치투자자들은 향후 1~2년 정도의 예상 실적에 기댄 밸류에이션의 저평가 여부보다 기업이 영위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의 퀄리티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받고 있다.

소수의 잘 나가는 빅테크 기업들에도 요즘과 같은 극심한 주가 쏠림은 바람직하지 않다. 실물 경제에서 기업의 가치는 장기간에 걸친 활동을 통해 형성된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때 종종 ‘영속기업’의 가정이 들어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반면 주식시장은 아주 먼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기업의 실적을 당장의 주가에 투영할 수도 있다. 아무리 훌륭한 기업이라도 그 기업의 미래가치를 주가가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면 좋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다. ‘매그니피센트 7’의 주가가 버블이라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상당히 먼 미래의 실적에 대한 기대까지도 주가는 반영하고 있는데, 미래에 대한 기대는 당장 검증될 수 없다. 기대의 타당성 여부를 지적하는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는 시간이 흘러가봐야 검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희미하기에 미래에 대한 믿음의 공고화 여부는 대중들의 수용도에 달려있다. 대중이 믿으면 높은 밸류에이션이 수용될 수 있고, 믿지 않으면 밸류에이션이 낮아져도 외면받을 수 있다. 아마존은 위대한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하지만, 닷컴 버블 때 달아오른 주가가 조정을 받을 때 고점 대비 94%나 하락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65%나 급락한 이후 6년 여의 횡보기를 거쳤다. 4차 산업혁명의 배타적 성격은 특정 종목으로의 쏠림을 부르고 있고, 선도주들의 밸류에이션 부담은 이에 비례해 커지고 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해도 좋을 투자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도주들의 높은 밸류에이션은 시장 전반의 극심한 변동성을 예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