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24.02.21 05:00:00
의대 정원에 반대하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 수천명이 그제 무더기로 사직서를 내고 서울의 ‘빅5’병원은 물론 지역 거점 병원에서도 근무를 중단하는 전공의가 속출하면서 의료 대란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맞서 보건복지부가 전국 221개 전체 수련병원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 유지 명령을 발령하고, 의사협회 지도부 2명의 면허정지에 착수하는 등 초강수로 대응하면서 의·정 마찰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3.7명)을 크게 밑도는 우리나라의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정부 주장에는 틀린 데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탓에 의료 수요가 급증할 것이 뻔한 데다 의대 정원이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계속 묶여 있었음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지난 20년간 의대 정원을 두 배로 늘려온 영국이나 38% 늘린 미국 등에서 의사들의 집단 반발이 없었음에 비춰 본다면 우리 의료계의 집단 행동은 납득하기 어렵다. 여러 여론 조사에서 증원 지지 의견이 80% 안팎에 달할 만큼 높았던 터라 질타와 비판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 닥친 혼란과 불안, 그리고 국민의 피해를 생각한다면 의·정 충돌이 더 큰 대란으로 번지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의료진의 실력과 서비스 질에서 세계 정상급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에서 환자가 수술실과 응급실에서 의사 도움을 받지 못해 사경을 헤맨다면 이는 망신거리가 되고도 남을 일이다.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하겠다는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도 빈말이 될 뿐이다.
정부가 의료 대란 대응에 만전을 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 당국과 의사들 간에 오가는 거친 말은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의사가 국민에게 협박한다” “의새” 등 관료들의 압박성 발언이 대표적이다. “의료 대재앙을 맞이할 것”이라는 의료계의 맞대응도 선을 넘기는 마찬가지다. 필수수가 5배 인상, 민형사 책임완화 특별법 제정 등을 거론한 의료계 원로들의 고언을 정부는 새겨들어야 한다. 2000명 증원을 ‘정치쇼’라고 말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발언 같은 언사도 더 없어야 한다. 정치권의 무책임한 문제 제기와 개입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