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내 사전에 '당연'은 없다

by송길호 기자
2022.10.28 06:15:00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제 직업은 관점디자이너(perspective designer)입니다. 직업을 재정의(redefine)한 저는 항상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힘’을 기르라고 많은 이들에게 말합니다. ‘당연함을 부정하라’고 말합니다. 통념에서 벗어나서 같은 대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체계를 만드는 것이 관점디자인(perspective design)의 핵심입니다. 저에겐 통념에 갇히다보면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살거라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많은 것들에 대해 모두 그것이 당연하다면 바꿀 것은 하나도 없겠지요. 그래서 저는 다르게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한자(漢字) 문화권에 삽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쓰는 말은 한자를 빼고는 소통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한자교육이 폐지되고 그 폐해가 요즘 들어 언론에 자주 보입니다. ‘심심한 사과’를 재미없고 지루한 사과로 해석하거나 통화량이 증가해서 물가가 오른다는 표현에 ‘전화통화를 많이 하는데 왜 물가가 올라가냐?’고 묻는 아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언론에서는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기사를 쏟아냅니다. 씁쓸합니다.

한자는 ‘뜻글자’입니다. 한 글자마다 저마다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눈으로 대상의 존재나 형태적 특징을 안다’라는 의미의 ‘보다’라는 의미를 가진 한자를 찾아보았습니다. 견(見), 시(視), 관(觀), 람(覽), 간(看), 감(監), 진(診) 등 같은 뜻을 가진 것들이 많더군요. 우리말로는 ‘보다’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이 글자가 한자로는 왜 이렇게 많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대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기억이 자리 잡고, 그 기억에 따라 생각이 탄생하고 머릿 속 한자리에 통념으로 자라게 됩니다. 같은 것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생각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머리 속에 존재하는 것들은 세상이 보여준 것들에 의해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된 것들입니다. 내가 본 것과 세상이 보여준 것들을 통해 형성된 통념 속의 단어들이 의식의 해석체계를 만들고, 내 생각을 끌고 가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익숙하게 보았던 단어들이 갑자기 낯설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깨달음이 열리는 시간입니다. 통념으로 기억에 자리 잡았던 한 단어 한 단어에 낯섦이 열어준 새로운 관점이 열리면서 생각은 성장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습관적으로 익숙하게 보던 많은 것들에게 낯선 물음표를 던져봅니다. ‘너는 왜 그런 이름으로 불리니?’ ‘너에게 그런 이름을 붙인 사람의 생각은 어땠을까?’ 등등 수많은 상황에서 질문을 던지고 머릿속에서 떠오른 답을 들어봅니다. 질문이 이어지고 꼬리를 무는 이런 과정을 통해 내 생각은 못보던 영역의 것들을 볼 수 있게 되고, 음영처리됐던 생각의 새로운 부분이 열리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신념이라고 믿고 있던 것들은 하나씩 하나씩 다른 의미로 진화하게 됩니다.

나에게 있어 세상이 만든 사전(辭典)은 생각의 기초일 뿐 그 사전의 개념대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즉, 사전 속에 갇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죠. 생각이 높은 어떤 사람과의 대화에서 내가 감탄하는 순간은 바로 사전 속에 갇히지 않은 단어의 새로운 면모와 쓰임새를 찾아낼 때입니다. 아하!라는 짧은 탄식과 함께 새롭게 발견하게 된 그 단어들의 새로운 면모를 통해 생각은 자란다고 믿습니다. 내가 가진 신념이라는 단단한 체계는 새로 바꿔 끼울 수 있는 단어에 대한 새로온 해석체계로 인해 유연해집니다. 단단한 것은 부러지지만 유연한 것은 강한 것을 견뎌내는 힘을 만들어냅니다. 사유의 체계도 마찬가지죠. 경험한 생각 안에 갇혀 있는 꼰대가 아니라 생각의 높이와 깨달음의 두툼함을 통해 내 생각의 세계를 유연하게,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사람이 강합니다. 나의 신념사전은 순간 순간 개정판을 발간할 준비를 하고 있고, 항상 바뀌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