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롯' 김태연 배출한…“(윤)영달이어라~”[오너의 취향]

by전재욱 기자
2022.08.04 06:30:00

파산직전까지 갔던 와중에 산중에서 마주한 '대금 가락'
이를 계기로 국악에 빠져 경영에까지 접목한 예술 경영인
'맛동산' 발효과정서 국악 들려줘 숙성 도와 맛 향상
국악인 양성 요람 역할해 '미스트롯' 출신 김태연양 배출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크라운제과는 1998년 화의(현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갔다. 회사가 다시 일어서리라고 낙관하지 못했다. 환란 탓에 대우나 기아같은 대기업도 쓰러지던 때였다.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당시는 크라운제과 사장)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윤 회장은 그때를 `죄인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절`이라고 술회한다.

2011년 열린 제7회 창신제 공연에서 동락연희단의 공연을 즐기는 윤영달(가운데) 크라운해태 회장.(사진=크라운해태)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북한산을 자주 올랐다. 언젠가 산중에서 들려온 대금 가락에 넋을 놓고 빠져들었다. 회사가 화의까지 이른 지난날이 스쳤다. 환란이 일자 우호적이던 은행들이 등을 보였다. 사재까지 동원해 대출을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끝내 회사를 부도로 내몬 것은 단돈 2억 원짜리 어음이었다. 분노와 억울함이 복잡하게 얽혀 머리를 어지럽혀왔다. 대금 가락에 이런 감정이 쓸려 내려갔다. 머리가 맑아졌다. 기필코 회사를 살리리라는 심지를 세우는 계기가 됐다. 회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2003년은 정상화에 성공했다.

회사가 정상궤도에 오르고 `대금`은 경영 전반에 파고든다. 대금을 익히기 여의찮아 단소를 배우면서 국악인과 교분을 쌓았다. 그러면서 힘겨운 국악계 현실에 눈을 떴다. 북한산에 올랐던 시절 자신이 떠올랐다. 이들이 가장 목말라한 것은 무대였다. 크라운해태는 2004년 국악 무대 `창신제`(創新祭)를 열어 갈증을 풀어줬다. 이 무대가 내년이면 20주년을 맞는다. 10년 전 무대는 윤 회장 개인에게도 뜻깊었다. 2012년 창신제에서 자신이 리드(도창)해 임직원 100명과 함께 판소리 사철가를 완창했다. `월드레코드아카데미`가 판소리 부문 세계 최대 인원 동시 공연으로 인증했다.

김태연양.(사진=TV조선 미스트롯2 홈페이지)
창신제가 무대라면 2007년 창단한 `락음국악단`은 양성소다. 민간 최초로 만든 국악단은 국악인이 활약할 기회를 제공했다. 명창으로 구성한 양주풍류학회는 2010년부터 ‘대보름 명인전’을 연다. 현재까지 누적 공연 1500회를 돌파했다. 서울남산국악당은 2017년 리모델링하면서 크라운해태 후원으로 재탄생했다. 이를 계기로 `크라운해태홀`이 마련됐다. 여기서는 매주 일요일 영재국악단 공연이 열린다. 리모델링을 거치기 이전인 2015년부터 이어진 국악 영재 양성의 요람이다.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 ‘미스트롯’ 출신 가수 김태연양이 이곳을 거쳤다.

국악 인재 육성은 체계적이고 지속적이다. 크라운해태가 주관하는 `모여라! 국악영재들 경연대회`(단체)와 `아트밸리 국악 꿈나무 경연대회`(개인)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영재국악단 무대에 오른다. 여기서 선발되면 영재한음회에 설 기회를 준다. 비용은 다 크라운해태가 댄다. 영재한음회 수익금은 전액 적립해 나중에 해외 공연 경비로 활용한다. 오는 1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2회 경연이 열린다. 영재에 진심인 이유는 `어려서 순수한 국악을 흡수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윤 회장 지론 덕이다.



국악이 회사 경영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갸우뚱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회사를 대표하는 ‘맛동산’과 ‘아이비’ 과자는 제조 과정에서 국악 발효 공정을 거친다. 반죽이 국악의 파동으로 더 잘 숙성하고 이게 맛의 향상으로 이어진다. 다른 제과업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공법이다. 원래는 클래식을 틀었는데, 윤 회장이 2005년 회장에 취임하고 바꿨다.

크라운해태 ‘맛동산’(왼쪽)을 제조하는 청주공장 공정. 이 과정에서 국악을 틀어서 반죽의 발효를 돕는다.(사진=크라운해태)
공연이 가져온 나비효과는 더 엄청나다. 2003년 화의 종료를 기념해 연 국악 공연이 대표적이다. 점주들, 소위 슈퍼마켓 주인이 대상이었다. 나이 지긋한 이들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관람을 마치고 돌아갔다. 그날 이후부터 회사 영업사원을 대하는 표정이 우호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제과업계 4위이던 회사가 상위권 회사를 제치고 매대를 확보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은데, 국악은 단비와 같았다. 이 공연을 업그레이드하고 정기화한 게 2004년 창신제다.

국악으로 덩실춤을 추게 된 회사는 2005년 제과업계 2위 해태제과를 인수했다. 새우가 고래를 삼킴으로써 지금의 크라운해태그룹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크라운해태 사정을 잘 아는 이는 “창신제 이후 슈퍼 주인들이 회사 제품 매대를 늘려준 것이 매출이 늘어난 계기가 된 걸로 안다”며 “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예술 경영이 시작돼 회사를 상징하기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이 2012년 창신제에서 임직원과 사철가를 완창하기 앞서 도창하는 모습.(사진=크라운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