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조세범죄 똑똑해지는데…형량·재판회부율은 ‘걸음마수준’

by조용석 기자
2018.10.29 05:00:00

조세범죄 기소율, 전체 형사범죄보다 15%p↓
실형비율 낮고, 집행유예 비율 높고…재산형 35%
범죄증명 어려운 조세범죄…“전문수사기관 필요”
금태섭 의원 “실효적인 형벌 부과할 필요 있어”

(자료 = 금태섭 민주당 의원실, 기소율은 2008~2018년7월, 나머지는 2008~2017년)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사례1. 아들에게 고가 아파트를 사주고 싶었지만 증여세는 내기 싫었던 A씨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현금자동입출금(ATM)로 자신의 돈을 인출한 뒤 아들 계좌에 다시 입금하는 것이다. 계좌이체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한 꼼수였다. A씨와 아들은 ATM 입출금을 무한반복하며 10억원대의 부동산을 다수 취득했다.

사례2.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허위장부를 근거로 소송사기를 벌이며 270억원대의 법인세 등을 부정 환급받은 혐의를 받는 대기업 부회장 B씨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B씨가 세무조사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만 인정했다.

조세범죄가 갈수록 지능화·다양화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처벌은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재정에 악영향을 미치는 조세범에 대해 실효성 있는 처벌을 부과하는 한편 세무당국과 수사기관이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올해 7월까지 최근 10년간 조세범죄에 대한 기소율(재판 회부율)은 23.1%로 전체 형사범죄 기소율(38.7%)과 비교해 15.6%포인트나 낮았다. 2008~2010년에는 조세범죄와 전체범죄 기소율 차이가 계속 20%포인트가 넘었다.



처벌 역시 약했다. 2008~2017년 1심 기준 조세범처벌법 위반으로 무기징역 제외 자유형(징역·금고·구류)을 선고받은 비율은 평균 11.6%로 전체 형사범죄(18.3%)와 비교해 7%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났다. 반면 집행유예 비율은 43.8%로 전체(27.6%) 보다 16.2%포인트 높았다. 실형 선고비율이 낮은 것 뿐 아니라 실제 수감하지 않는 관대한 처분이 많은 셈이다. 재산형(벌금·과료·몰수)의 비율은 35.1%로 전체 형사범죄 재산형 선고 비율인 32%보다 높았다.

조세범에 대한 기소율이 낮은 것은 수법의 지능화·다양화로 인해 범죄의 증명이 쉽지 않다는 점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또 기소되더라도 법원을 설득하지 못하는 사례도 증가추세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조세범에 대한 처벌 현황 및 개선방안’ 이라는 정책보고서 따르면 2008년 1심 기준 1.69%(1719건 중 29건) 수준이던 조세범죄 무죄율이 2017년에는 3.79%(1793건 중 68건)으로 증가했다. 미국의 CID처럼 조세범죄 조사를 전담하는 독립 조직을 만들고, 과세당국의 조사권을 강화해 검찰과의 유기적 협조를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법원의 관대한 판결은 조세포탈에 대한 처벌보다는 국고 회복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세금을 낼 경우 이를 큰 감형요소로 본다는 얘기다. 독일·미국·일본 등과 달리 조세포탈 미수범 처벌 규정이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조세범죄에 대한 양형기준도 세분화되지 않아 법관이 자의적으로 감경할 여지가 크다는 지적도 있다.

금태섭 의원은 “조세범죄는 국가 재정수입을 감소시키고 성실한 납세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므로 조세범에 대한 실효적인 형벌 부과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