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집값에 서둘러 내집 마련…자가 보유 61.1% ‘사상 최고’

by권소현 기자
2018.05.09 05:00:00

2017년도 주거실태조사
집값에 조금 모자란 전세값…대출 받아 집 마련
갭투자 늘면서 전세가구 비중 늘고 월세비중 줄어
청년가구는 주거불안…70%가 월세

그래픽=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올해로 결혼 8년차인 구모(42·여)씨는 작년 초 둘째를 낳을 때까지도 집을 살 생각이 없었다. 집값은 오를 것 같지 않은 데다 굳이 보유세(재산세)까지 내면서 살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작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집값이 꿈틀대자 생각을 바꿨다. 집값이 한동안 오를 것으로 생각한 구씨는 서둘러 지금 사는 단지 내 아파트를 전세 끼고 일부 대출을 받아 샀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전세계약이 끝나면 매수한 집에 들어가 살 계획이다.

내 집 보유 비중이 7년 만에 다시 60%를 넘어섰다. 내 집에서 거주하는 자가점유율도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새 정부 들어 집값이 뛰자 앞다퉈 내 집 마련에 뛰어들면서 자가점유율과 보유율이 모두 높아진 것이다.

8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7년도 주거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작년 자가점유율은 전체 가구의 57.7%로 전년보다 0.9%포인트 증가했다. 자가보유율 역시 61.1%를 기록해 1.2%포인트 늘었다. 자가점유율과 자가보유율 모두 조사를 시작한 2006년 이후 최고치다.

이번 조사는 국토연구원과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5~9월 전국 17개 시·도 6만여 가구를 대상으로 개별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다. 격년으로 조사하다 작년부터는 매년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자가점유율과 보유율이 높아진 것은 집값 상승 기대감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택시장이 위축되면서 전세보증금이 집값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아도 전세를 고집했던 이들이 작년 새 정부 출범 이후 집값이 오르자 대거 매수에 나선 것이다. 한동안 집은 사는(living) 곳이란 생각이 강했다면 이제 사는(buying)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진 셈이다. 실제 조사 대상 6만여 가구 중 ‘내 집을 꼭 마련해야 한다’고 답한 비중은 82.8%로 전년(82%)에 비해 높아졌다.

주로 저소득층이 실거주 목적의 내 집 마련에 적극 나섰다. 저소득층의 자가점유율은 47.5%로 전년 대비 1.3%포인트 올라갔고, 중소득층은 60.2%로 0.8%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고소득층은 73.5%로 전년보다 0.1%포인트 하락했다. 자가보유율은 중소득층(1.6%포인트)에서 가장 큰 폭으로 늘었고 저소득층(0.8%포인트)·고소득층(0.6%포인트) 순이었다. 강미나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2016과 지난해 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전세가율)이 70%를 넘다 보니 내 집 장만에 뛰어든 실수요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실거주 목적 외에 전세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자’도 늘면서 전체 임차가구에서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늘고 월세 비중은 줄었다. 한때 저금리 기조로 집주인들이 월세로 전환해 전체 임차가구에서 월세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45%에서 2016년 60.5%로 급증했지만 작년에는 60.4%로 소폭 줄었다. 반면 전세 비중은 39.6%로 전년 대비 0.1%포인트 늘었다. 이에 따라 임차가구의 월세 부담은 다소 줄었다. 임차가구의 월소득에서 차지하는 월임대료 비율(RIR)은 전국 17.0%(중위수)로 전년 18.1% 대비 낮아졌다.

자가 가구의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전국 기준으로 5.6배로 200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번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꼬박 5년 이상 모아야 집 살 수 있다는 것으로, 그만큼 대출 없이는 집 장만하기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수도권에 사는 직장인이 내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는 6.7년치 연소득을 고스란히 모아야 한다. 실제 생애 첫 집을 사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6.8년으로 작년 6.7년에 비해 늘었다.

때문에 임차가구는 소득이 낮을수록 공공임대주택 입주에 대한 의지가 컸다. 전체 임차가구의 57%가 낮은 임대료와 주거 안정 등의 이유로 공공임대주택 입주 의향이 있다고 밝혔고, 저소득층에서는 이 비율이 62.6%로 올라갔다.

한편 청년은 주거안정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가구의 자가 점유율은 19.2%에 불과했고 임차가구 중 월세 비중도 71.1%로 일반가구 50.4%에 비해 높았다. 이렇다 보니 주거비 부담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월 소득 대비 월 임대료 비율(RIR)은 18.9%로 일반가구(17.0%)에 비해 1.9%포인트 높고 임대료와 대출금 상환 부담도 80.8%로 일반가구(66.0%)보다 13.2%포인트 높았다.

청년가구는 최저 주거 기준에도 못 미치는 곳에 사는 비율이 10.5%였고 지하·반지하·옥탑 거주 비중도 3.1%로 높았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그동안 정책이 사회취약계층의 주거 복지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청년주택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게 사실”이라며 “공공임대주택, 준공공임대주택, 셰어하우스 등 청년층이 접근 가능한 다양한 유형을 개발하면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계속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 이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