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異야기]"아파트 놀이터에 브랜드 입히고 고객과 함께 뛰놀았죠"
by박종오 기자
2014.07.09 07:00:01
조경으로 브랜드 가치 끌어올린 이재흥 에코밸리 대표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아이들이 뛰노는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의 가격은 얼마일까. 25평짜리 아파트 한 채값(전국 평균 1억8479만원)에 육박하는 1억7700만원이다. 조경업체인 에코밸리가 판매하는 아파트 놀이터 시설물 중 가장 고가인 ‘신비의 나무’ 판매 가격이다.
조경은 더이상 집의 부속물이 아니다. 아파트 지상을 메웠던 자동차들은 모두 지하주차장으로 숨은 지 오래다. 그 자리를 인공의 자연이 꿰찼다. 놀이터와 정원, 광장이 아름다울수록 집의 가치는 높아진다. 에코밸리는 그 바람을 탄 회사다. 2000년 조경사업에 첫 진출해 많게는 연간 아파트 50~60개 단지의 조경 공사를 맡았다. 서울 송파구 ‘잠실 파크리오’와 용산구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동작구 ‘흑석 한강 센트레빌’, 성북구 ‘길음 두산 위브’, 부산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 등이 에코밸리 손을 거친 단지다.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에코밸리 사옥에서 이 회사의 이재흥 대표를 만났다. 연 매출액 400억원이 넘는 조경업계 3위 강소(强小)기업인 에코밸리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들어봤다.
우선 물었다. 왜 하필 조경이었을까.
“조경을 여전히 나무나 심는 단순한 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조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어떻게 아름답게 가꾸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일입니다. 건축과 토목을 망라한 종합예술 행위죠.”
이 대표는 조경 외길을 걸었다. 첫걸음을 뗀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자연 속에서 뭔가 만드는 일이 좋았어요. 학창시절에도 공작시간이 제일 즐거웠죠. 그러던 와중에 잘 아는 고등학교 1년 선배가 대학 조경학과에 입학한 거에요. 당시만 해도 조경은 참 생소한 분야였지만, 미래가 밝다는 선배의 설명을 듣고 나서 이거 다 싶었죠.”
선배 따라 경희대 조경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곧장 두산건설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다시 조경 업무를 맡았다. 그는 1993~1995년 일산신도시 호수공원 공사를 진행하며 조경업의 성장 가능성을 확신했다. 공사비만 255억원이 투입된 국내 조경업계 최대 규모의 공사였다. 이전까지 대규모 택지 개발사업에서 조경이 차지하는 몫은 주거지를 건설하면서 단지 안에 작은 공원을 조성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대형 건설사가 공원만 전담해 공사하는 일은 이때가 최초였다.
이 대표는 1998년 겨울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나왔다. 부인과 맞벌이해서 번 돈과 퇴직금 3억여원을 들고 2000년 6월 ‘내 회사’를 차렸다. 이미 조경업만 10년 넘게 해온 베테랑이었다. 회사 동료 5명이 창업에 힘을 보탰다. “왜 두렵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은퇴 없이 함께 일하고 싶었습니다. 내 사업을 하면 계속 일할 수 있잖아요.”
마침 시기도 좋았다. 1997년 외환위기로 꺼졌던 부동산 경기가 다시 살아났다. 아파트의 고급 상품화도 시작됐다. 주부들은 입지 만큼이나 단지 내 조경을 깐깐하게 살폈다. 건설사들도 조경 공사에 돈을 더 쓰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창업 2개월 만에 첫 공사를 수주했다. 회사 덩치는 계속해서 불어났다. 창업 5년여 만에 연 매출액 100억원을 돌파했다.
운이 전부는 아니다. 에코밸리의 주력사업 분야는 조경 시설물 공사다. 2005년 당시 국내 조경시장 규모는 신규 수주액 기준으로 약 3조5500억원. 조경 시설물 공사 업체 수는 이미 1300여개에 달했다. 연매출 30억원도 올리지 못하는 영세 조경업체가 숱했다. 건설사가 발주한 공사를 설계대로 착실히 시공하는 것 만으로는 경쟁력을 갖기 어려웠다. ‘차이’가 필요했다.
이 대표는 그 ‘차이’를 새 상품 발굴에서 찾았다. “시공 품질만큼은 자신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사업을 다각화하기로 했죠. 그러자면 새 제품이 필요했습니다.”
먼저 물을 건넜다. 2005년 영국과 이탈리아 조경 시설물 업체와 기술 협약을 맺었다. 그것으로 부족했다. 직접 국내에 기술연구소를 차리기로 했다. 다른 회사가 시도하지 않는 연구·개발 투자의 성과가 그해부터 차츰 나타났다. 에코밸리가 생산한 조경 제품에 자체 브랜드를 붙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2005년 벤치, 페르골라(정자), 그네·시소 등 복합 놀이기구에 ‘Air(에어)’라는 이름을 달았다. 공기처럼 친숙하고 생명력이 넘친다는 의미다. 이후 비탈을 콘크리트 대신 자연석 옹벽(흙이 무너지지 못하게 만든 벽체)으로 마감하는 ‘Eco-belt(에코 벨트)’, 금강산 등 명산의 외관을 본따 계곡·폭포·자연석 등을 설치한 인공 정원인 ‘산수원’ 등 특허 상품이 쏟아졌다.
‘Air·Eco-belt·산수원’은 지금의 에코밸리를 떠받치는 지지대가 됐다. 조경 계획부터 설계·디자인·시공·관리를 아우르는 체계와 공사 수주에 목 매지 않고도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제조업 기반도 마련됐다.
“매년 새 상품을 출시하는 것이 우리의 원칙입니다. 그래서 직원들과 회식 자리에서 건배를 할 때도 늘 이렇게 외칩니다. ‘better and better(더 좋은), better than thinking(생각보다 좋은), better than dream(꿈보다 좋은)’” 이 대표가 강조했다.
| △에코밸리가 조경 공사를 맡은 경기 광주시 ‘초월 e편한세상’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제공=에코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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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남들 가지 않는 길을 또 걸을 태세다. 올해 에코밸리의 매출액 목표는 300억원이다. 지난해 매출 실적은 430억원 가량이었다. 회사 덩치를 오히려 줄이겠다는 ‘역발상’이다.
비밀은 ‘체질 개선’에 있다. 사실 국내 조경산업의 미래가 밝다고만 보긴 어렵다. 무엇보다 시장이 포화 상태다. 대한전문건설협회에 따르면 에코밸리가 처음 문 연 해인 2000년 말 944개에 불과했던 조경 시설물 업체 수가 지난달 현재 2392개로 2배 이상 늘었다. 반면 통계청 조사를 보면 국내 조경시장 규모는 2009년 7조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줄곧 내리막이다.
에코밸리는 올해 자체 특허 제품의 판매 비중을 높일 계획이다. 대신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저가 투찰이 빈번한 아파트 공사 수주 비중은 줄일 방침이다. 이윤이 남지 않는 사업에서는 차츰 발을 빼고, 기술력에 바탕한 특화 상품을 활용해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도기에도 새 상품은 계속해서 나온다. 건물 실·내외 벽면에 녹색 식물을 배치하는 녹화 구조물인 ‘가든월’이 이미 새 이름을 올렸다. 앞으로 기능성을 보다 강화한 대중적인 조경 상품을 내놓겠다는 것이 에코밸리의 장기적인 목표다.
새로운 도전을 앞둔 이 대표는 주중에 아이들에게 ‘아빠의 자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다. 실패한 가장으로 비춰지는 것이 싫어서다. 그런 그의 일정이 요즘 대외 활동으로 더 분주해졌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했다. 이 대표는 5층짜리 사옥의 꼭대기층을 홀로 사용한다. 야근이 잦은 자신 때문에 퇴근을 앞둔 직원들이 눈치보지 않도록 배려한 결과다.
성공보다 치열한 삶 자체가 좋다는 이 대표가 말했다. “최근 브라질 월드컵 경기 결과를 두고 홍명보 감독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씁쓸해집니다. 한쪽에서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면서도, 실패를 받아들이지 않는 문화가 밑바탕에 깔린 거죠. 우리나라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한 기업인을 육성하려면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가 먼저 변화해야 합니다.”
[에코밸리 개요 및 연혁]△2000년 회사 설립 △2007년 사옥 준공 △2010년 정디자인환경연구소 기업부설연구소 설립(인가일 기준) △2012년 중소기업청 기술사업 지원업체 선정 △2013년 고용노동부 강소기업 선정
[이재흥 대표 약력]△1962년 충남 홍성 출생 △경희대 조경학과 졸업 △경희대 행정대학원 환경행정학 석사 △두산건설 근무 △2000년 6월 창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