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 질서·무질서 넘나드는 '몸짓미학'

by문화부 기자
2014.06.02 07:28:23

-심사위원 리뷰
K-Arts무용단 정기공연
안성수 ''볼레로''…순수 움직임에 탐닉
김삼진 ''네 번째 시도''…다양한 장르 움직임 혼재
남정호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시대 아픔 예술로 승화

안성수 ‘볼레로’의 한 장면(사진=뉴시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전통사회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이 땅에 수입된 서양 모던댄스는 단숨에 대중의 심미안을 자극했다. ‘이상한 배를 타고’ 건너온 모던댄스는 ‘양춤’의 대명사로 인식됐다. 전수 혹은 답습이 아닌 자유로운 신체성에 바탕한 독특한 움직임 문법은 낯설지만 심미적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모던댄스의 화두, 즉 자유로운 창작정신은 근·현대 한국 의 무대미학을 견인했다.

1960년대 춤아카데미즘이 구현되면서 한국 현대춤의 목표는 지성화와 창작화, 그리고 순수예술화로 모아졌다. 창작의 자율성에 대한 열망은 장르파괴를 가속화했다. 삼분법적 장르파괴를 표방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은 기존의 완고한 무용교육시스템에 충격을 던졌다. 예술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평가도 낯설지 않다. 지난달 23일과 24일 양일간 서울 화랑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극장에서 공연된 ‘K-Arts무용단 정기공연’은 무용원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한 무대였다.

안성수의 ‘볼레로’는 초연 이래 버전을 달리하면서 예술적 진화를 모색한 수작이다. 무대엔 질서와 무질서, 반복과 변형이 교차한다. 라벨의 ‘볼레로’에 맞춘 무용수들의 몸짓은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무대미학은 윤회에 방점이 찍혀 있다. 무대 중앙을 점유한 원형은 윤회의 상징이다. 언제나 불변의 법칙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원형에서 벗어난 무용수들의 확장된 공간구성은 다채로운 형상으로 변주된다. 장르의 경계를 넘어 순수 움직임에 탐닉한 독특한 몸놀림은 심미적 쾌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김삼진의 ‘네 번째 시도’ 역시 같은 프레임으로 읽힌다. 장르를 간파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문법의 움직임이 혼재돼 있다. 타악 리듬과 거문고 선율에 맞춘 6인무는 부드럽게 혹은 격정적으로 삶을 객관화한다. 한국춤 몸짓을 변용한 현대적 움직임과 전통가락의 어울림이 이채롭다. 전통이 창작의 원천임을 새삼 일깨운 무대였다.

과정의 순수성을 구현한 남정호의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는 창작수업의 온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종이박스를 뒤집어쓴 무용수들의 긴 침묵은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우회적 항변이다. 무용수들은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존재를 재확인한다. 처절한 울부짖음이다. 말(언어)과 몸짓이 혼재된 가운데 집단에서 개체로 뭉쳤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장미꽃 제의식 장면은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일종의 씻김굿이다. 통탄에 빠져 있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안겨준다. 시대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정신의 발로다. 후반부 관객과 무용수가 하나된 혼연일체의 장면은 감동적이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딛고 우리 모두 일상으로 복귀하자는 무언의 메시지다. 예술(춤)의 힘이 오롯이 느껴지는 인상적인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