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틀짜는 세계경제)③지키려는자, 뺏으려는자

by오상용 기자
2009.10.08 09:40:00

G20 부상, 아니 중국의 급부상
`시간벌자`는 미국..주변국과 불편한 동거

[이데일리 오상용기자] 황무지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라면 신(新)질서는 기존 질서 위에 똬리를 튼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금융쇼크와 글로벌 경기후퇴는 여느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변화의 싹을 잉태하고 있다. 미국 달러 패권의 부침, 이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기축통화 논의, 주요 20개국(G20)회의체의 부상 등 세상은 새로운 틀과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변화는 생각 보다 더딜지 모른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들 사이에 알력도 만만치 않을 게다. 중요한 것은 반세기 넘게 발을 딛고 살아온 지각에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이고 사람들은 자신이 뿌리 내린 지표면이 탄탄한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시작은 물론 미국에 맞설 세력의 등장과 함께 한다.



▲ 부상하는 중국 경제
미국발 금융쇼크와 경기후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입지를 다진 다국적 협의체는 G20회의다. 위기가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 10월 선진7개국(G7)협의체를 대신해 금융경색 해소방안과 경기부양을 위한 공조방안을 마련했다. 올 들어서는 글로벌 금융규제강화와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가 G20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186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IMF에서도 G20의 위상은 높아졌다. 지난 4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고위급 회의인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가 합의한 내용은 지난달 G20 정상들이 결의한 내용을 되풀이하는 수준이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총재까지 나서 "주요 20개국(G20)이 국제금융협력 체제로서 선진 7개국(G7)보다 더 대표적인 체제"라고 천명할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처럼 G20은 G7을 대신할 신질서 같아 보인다. 그러나 G20에 포함됐다 해서 누구 말처럼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은 아니다.

G20을 움직이고 헤게모니를 잡아나갈 나라는 어디인가. 넓게 보면 기존 `G7+중국`, 좁혀 보면 `미국과 중국`이다. 기존질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위에 중국이 가세했을 뿐이다. 그래서 G20이 거둔 쾌거는 사실 중국의 쾌거다.

그럼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미국의 독주를 견제할 세력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고 국제사회도 이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신흥국가의 구심점, 나아가 세계경제의 축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개방책을 펼친지 30여년만에 중국은 세계 1위 수출국,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으로 올라섰다. 전 세계 경제가 뒷걸음치고 있는 상황에서도 중국은 8%대의 고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세계경제에서 기축통화가 바뀌는 것은 게임의 룰이 변하는 것이다. 흔들리는 달러패권과 신질서라 칭해지는 G20의 부상을 지켜봐야 하는 미국은 어떤 심정일까. 미국입장에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유로의 출범과 중국의 부상, 쌓여가는 재정적자로 달러의 위상추락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 글로벌 약달러 추이
5년전으로 돌아가보자. 2004년 11월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은 독일 베를린에 모여 세계경제 현황을 진단하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당시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외환보유고의 통화 다변화를 본격적으로 모색하던 시기였다. 달러가치도 연일 곤두박질쳤다. 각국 언론은 G20 회의에서 약(弱) 달러에 대한 공동 대응책이 논의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약 달러 방어에 대한 논의는 무위에 그쳤고 논점은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절상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흘렀다.

지난달 끝난 G20정상회담에서도 글로벌 약 달러를 둘러싼 이전투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사실상 글로벌 불균형 해소에 방점이 찍히면서 G20회의는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수순에 그치고 말았다. 티모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의 "기축통화로서 달러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힘쓰겠다"는 립서비스가 전부였다.

이번에도 시간이 해결해줄까. 약 달러로 미국의 무역적자가 줄고 미국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달러의 패권은 다시 돌아올 것인가. 미국은 그렇게 바라고 있다. 시장의 생리상 다시 한번 계기가 주어지면 분위기는 `달러 모으기`로 돌아설 것이라 믿고 있다. 당장은 달러를 대체할 통화가 없다는 자신감도 깔려 있다.



이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석달후 세계경제가 다시 급격한 경기후퇴(더블딥) 상황에 놓인다면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안전자산으로의 도피일 것이다. 그러면 중국의 위안인가, EU의 유로인가, 일본의 엔인가, 아니면 미국의 달러인가? 돈은 다시 `달러`로 몰려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달러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인식, EU나 중국 경제도 불안하다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면 외환시장은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달러`를 외쳐댈 것이다.
 
기축통화는 단순히 경제규모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세계인의 `인식`이 결정한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공감대가 그 나라 돈을 기축통화로 받아들이게 한다. 최강국을 지탱하는 주춧돌에는 경제규모외에도 군사력, 정치력, 외교력, 글로벌 산업 및 금융의 표준결정력 등 다방면의 요소가 깔려 있다.

이렇게 봤을 때 미국을 대신하기엔 아직 중국의 입지가 약하다. 미국 달러에 대항해 연합전선을 펴기에는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미국과 얽혀있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주요 선진국들은 기축통화로서 달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성토하지만 자신들이 보유한 달러 자산가치가 내동댕이쳐지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결국 당분간, 어쩌면 상당기간 불편한 동거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세계경제를 위해서도 달러를 권좌에서 내모는 것은 서서히 진행되는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질서의 새판을 짜기 위한 변화는 시작됐다. 단지 기존 질서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만큼 임계점에 이르지 않았고 대안이 마련되지 않아 속도가 더딜 뿐이다. 도전과 응전은 시작됐고 결과물은 시간이 가고 실패의 경험이 축적되면 도출될 것이다. 2009년 `글로벌 약달러`와 `G20의 부상`이 갖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