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황병서 기자
2023.10.10 05:37:00
카톡 오픈채팅방 ‘거지방’, 청년 세대서 인기
낭비엔 가차없는 잔소리, 절약엔 독려 분위기
만보기 앱으로 소비 절약·밥값 줄이려 자발적 회식 참여도
일주일치 식단 미리 정하고 냉장고에 써 붙이기도
[이데일리 황병서 이영민 기자] “커피요? 녹차 티백으로 타드시고 한 달에 3000원만 쓰세요.”
한 이용자가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커피 값으로 월 15만원을 쓴다고 하자, 여러 사람으로부터 훈수 댓글이 이어졌다. 일명 ‘거지방’이라고 불리는 이 단체 대화방은 각자의 씀씀이를 공개하고, 이를 본 다수 사람이 무엇을 절약하면 좋을지 조언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500㎖의 생수 100병을 1만 6400원에 샀다는 자랑에서부터 커피를 사고 도장(스탬프)를 두 개 못 찍었다며 아쉬워하는 등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3500원짜리 일반 김밥이 아닌 4400원짜리 고추참치 김밥을 먹었다며 자신을 비판하며 씀씀이를 줄이겠다고 다짐하는 글들도 올라왔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5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증가하는 등 고물가 흐름이 계속되면서 10~30대 사이에선 ‘거지방’이 유행하고 있다. 거지방이란 카카오톡 내 익명으로 참가할 수 있는 오픈채팅 방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들이 이 방에 참여하는 이유는 자신의 지출을 점검받고 서로의 절약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기자가 직접 들어가 본 ‘거지방’에는 한 달 치 가계부 목록을 올려 점검을 부탁하는 사람부터 인터넷에서 저렴한 가격에 생필품을 살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 할인된 가격으로 점심값을 줄였다는 내용의 영수증을 올리며 자신의 절약 생활을 자랑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례들이 쏟아졌다.
3040 직장인 수백명이 참여하고 있는 이 채팅방에서 한 이용자가 “스타벅스 대신 회사 탕비실에서 카누로 커피 값을 줄였다”고 자랑했다. 다른 이용자가 “어제 치킨으로 사치를 부려 오늘은 굶고 있다”고 하자, 또 다른 이용자가 “아무리 절약이 좋다고 해도 굶지는 말아야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 990원 세일’이란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거지방’이 아니더라도 허리띠를 졸라매며 지출을 줄이려는 행태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만보기 애플리케이션(앱) 서비스를 통해 푼돈을 모으거나 리워드(보상)를 얻는 방식이다.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강모(28)씨는 2년 전부터 걸음 수만큼 제휴매장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주는 앱을 사용해 소비를 절약하고 있다. 강씨는 100보마다 1점씩 주는 포인트를 모아 편의점과 카페에서 음료를 구입하고 있다.
강씨는 “이 앱은 걷기만 해도 돈을 주니까 지금까지 쓰고 있다”며 “이번 명절 땐 부모님, 친척들과 어떻게 하면 포인트를 더 모을 수 있는지 얘기를 나누기도 했고, 서로 상품권이나 교환권을 주고받는 것도 쏠쏠하다”고 전했다.
늘어난 식사비는 회식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마저 바꾸고 있다.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윤모(28)씨는 매주 1~2번씩 있는 회식에 꼬박꼬박 참여하고 있다. 윤씨는 “회식 참석 여부는 자유인데 가면 적어도 월 4만원가량 되는 식비를 아낄 수 있다”며 “1인 가구로서 2인분은 시켜야 하는 삼겹살 등을 회식 때는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회식을 챙긴다”고 말했다.
한 푼이라도 낭비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주부들도 마찬가지다. 경기 용인시에 거주하는 문모(35)씨는 냉장고 앞에 아크릴판으로 일주일치 식단을 미리 작성하고 장을 보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문씨는 “일주일에 마트에서 장을 보는 비용으로 10만원정도 든다”며 “일주일 식단을 미리 정해놓고 장을 보다 보니 돈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고 절약 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고물가 시대의 이러한 ‘짠테크’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평가했다. 김상봉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물가에 개인이 대처할 수 있는 것이 덜 쓰는 것 말고는 달리 대안이 없다”며 “안 쓴 돈을 저축하거나 투자하니까 짠테크나 무지출을 무조건 나쁘게 볼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만, 가족이나 사회의 건강처럼 필수적인 분야까지 지출을 줄이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사회차원에서 주거비와 교육비 등 큰 지출이 발생하는 분야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