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CEO 떠나고 현장에선 추가업무 부담…기업 발목잡는 중처법

by이배운 기자
2022.12.05 06:15:00

태평양 중대재해대응본부 변호사들이 본 현장 실태
사고 터지면 ''경영자→피고인'' 신세…인재 확보 난항
''언제 이걸 다해''…현장 관리자들은 ''서류업무 부담''
안전 시스템 확충해도 ‘예상 밖’ 사고위험은 언제나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취지 자체는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직원들이 작업장에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는 것은 경영책임자들이 가장 바라는 바죠. 다만 목적은 옳더라도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이 문제가 있고 비효율적이면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무법인 태평양 중대재해대응본부 박준기 변호사(왼쪽)와 김상민 변호사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100여건의 중대재해 사건 대응 및 컴플라이언스 자문을 한 법무법인 태평양 중대재해대응본부의 박준기 변호사와 김상민 변호사는 4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경영자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 현행 중대재해법으로는 현장의 불행한 사고를 줄이고자 하는 입법 목적 달성에 무리가 있다고 했다. 아울러 지나치게 경직된 법령 탓에 일선 현장의 혼란과 기업 운영 부담만 가중되고, 실제 안전 확보를 위한 노력에 쏟아야 할 에너지가 분산되는 등 적잖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며 직접 보고 겪은 사례들을 소개했다.

박 변호사는 해외의 우수한 경영 인재를 불러오는데 중대재해법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어떤 기업에서 어렵게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를 모셔왔는데, 작업 현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터지면 그 CEO는 중대재해법 피의자로서 수년간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 억류되는 신세가 된다”며 “세계 여러 나라가 서로 모시려는 인재들이 이런 위험성을 감수하고 한국에 오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변호사는 이어 “실제로 회사가 해외 인재를 경영책임자로 스카우트하려고 해도 인재들이 좀처럼 오려고 하지 않아 차선책으로 한국인 임원을 승진시킨 경우가 있다”며 “반도체 등 첨단 제조 강국의 역량을 키우려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경영인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안타까운 경우”라고 말했다.

그래픽=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김상민 변호사는 경영책임자를 ‘타깃’으로 삼아 엄벌하는 법 구조가 현장 안전 확보로 이어지는 덴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대재해법 관련 초청 강연에 나가면 CEO들이 모인 자리는 집중력과 참여율이 굉장히 높다”며 “반면 현장 관리자들의 경우 ‘중대재해법 때문에 업무 부담이 훨씬 늘어났다’면서 늘어난 서류업무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거나 현장업무에 소홀해지는 것은 아니냐며 우려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또 “규모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 자체적으로 안전 관리팀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그 관리팀들은 중대재해법이 요구하는 관련 서류들을 새로 만드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그만큼 현장 안전을 챙기는 시간이 줄어든다”며 “중대재해법 때문에 기업 본사들도 안전관리 본부조직을 만들었는데 현업에서는 ‘옥상옥이다’, ‘현장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 것이냐’며 혼선을 겪고 갈등까지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박준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가 4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현장에서 경험하고 느낀 점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문제는 기업이 중대재해법 취지에 따라 안전관리 시스템을 대폭 강화해도 때때로 시스템을 벗어난 예측 불가능한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작업자가 출장지에 온 김에 다음 날 예정된 작업까지 미리 처리하려다가 안전 장비를 갖추지 않은 탓에 사고가 난 경우 회사가 지시한 것이 아니고 작업 보고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해당 회사 대표이사는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임의로 이뤄진 작업과 같이 회사의 예측 범위를 벗어난 사고에 대해 중대재해법 위반 논란이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을 회사가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사고는 중대재해법으로 인해 자칫 회사의 존폐가 걸린 중대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 박 변호사는 “어느 정도 규모가 큰 기업은 경영책임자가 재판에 넘겨져 자리를 비워도 운영은 된다”며 “하지만 규모가 작은 기업에선 경영책임자가 영업·재무·인사 등 중요한 일들을 도맡는데 갑자기 상당기간 동안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면 사실상 기업이 망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이것이 과연 중대재해법이 달성하고자 하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중대재해법에 단점만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산업 현장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일부 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았다는 평가도 상존한다. 다만 박 변호사는 “현행 중대재해법이 불러오는 여러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실효성을 높이는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무조건 경영책임자를 채찍질만 하기보다는, 당근도 제시함으로써 현장 안전 강화에 총력을 기울일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실효성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 역시 “‘무엇을 하면’ 처벌을 받는 형법의 개념과 달리 중대재해법은 ‘무엇을 안 하면’ 처벌을 받도록 해놔서 사업자가 종잡을 수가 없고 수사기관도 의미 파악이 잘 안돼서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을 정도”라며 “이런 불명확성을 해소하는 한편, 안전에 투자하는 기업에 실제 안전확보를 위해 지출한 비용에 관해 충분한 세제 혜택 제공 등의 보상을 주는 식으로 접근하면 기업들도 자발적으로 안전관리에 주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가 4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현장에서 경험하고 느낀 점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