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發 전염병 예견…바이러스 다룬 소설들 '눈길'
by이윤정 기자
2020.03.04 00:30:00
전염병 소재 책 판매량 560% 증가
소설 ''어둠의 눈'' ''28'' 등
논픽션 ''바이러스'' ''바이러스 쇼크''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중국 우한 외곽 소재 RDNA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그것을 그들은 ‘우한-400’이라고 불렀다.”
1981년 발간한 미국 작가 딘 쿤츠의 장편소설 ‘어둠의 눈(The Eyes of Darkness)’의 한 문장이다. ‘우한-400’이라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에 빠뜨린다는 게 이 소설의 설정이다. 40여년 전 쓴 이 소설은 중국 우한에서 본격화하면서 초기 ‘우한폐렴’으로 불렸고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을 정확히 예견한 듯한 상황 설정으로 놀라움을 자아낸다.
‘어둠의 눈’을 비롯해 현실과 꼭 빼닮은 바이러스 이야기를 다룬 소설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전염병으로 인한 고립 도시의 모습을 그린 작품, 101가지 바이러스를 다룬 논픽션 등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3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전염병’과 ‘바이러스’를 소재로 삼은 책 150종의 1~2월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약 560% 증가했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아동용 학습 만화인 ‘내일은 실험왕 47: 감염과 전염병’ 이었고, 멜릴린 루싱크의 ‘바이러스’, 최강석의 ‘바이러스 쇼크’, 네이선 울프의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가 뒤를 이었다.
‘어둠의 눈’은 중국 우한시 외곽에 있는 생화학 무기 연구소에서 만든 신종 바이러스 ‘우한-400’이 유출되면서 발생하는 일을 담았다. 치사율이 100%인 인공 미생물 ‘우한-400’과 그 바이러스에 걸린 대니, 아들 대니가 사망한 줄로 알았던 티나의 모성애를 그린다. 인터넷상에서 ‘예견서’로 큰 주목을 받으며 국내 출간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염병’을 소재로 한 고전소설인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도 다시 소환되고 있다. ‘페스트’는 전염병이 창궐할 때 드러나는 온갖 인간 군상을 실감나게 그린 소설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염병의 공포와 불안 속에서 고립된 도시 오랑의 의사 ‘베르나르 리유’와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재난 앞의 인간을 보여준다.
한국 소설 중에는 편혜영 작가의 ‘재와 빨강’, 정유정 작가의 ‘28’이 눈에 띈다. ‘재와 빨강’은 제약회사에서 약품개발원으로 근무하는 주인공이 C국에서 쥐를 잡는 임시방역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마침 C국은 쥐로 인한 전염병이 창궐한 상태다. “아무리 병독력 높은 전염병이라 하더라도 개인위생만 철저히 하면 걱정될 게 없다”고 믿었던 당국과 사람들의 오만이 처절하게 무너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펼쳐냈다.
‘28’은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 ‘화양’에서 28일간 펼쳐지는 이야기다. 온몸에서 피를 흘리는 남자를 구하던 119 구조대원을 중심으로 인구 29만의 화양시에서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발발하고, 국가는 군대를 동원해 도시를 봉쇄한다. 결국 화양은 점차 이성을 잃은 무간지옥(불교에서 말하는 고통이 가장 극심한 지옥)이 돼간다.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는 세계적인 바이러스 전문가인 저자가 파괴적 살인 바이러스의 정체에 대해 밝힌 책이다. 역사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인간과 바이러스 간의 관계를 밝혀내고, 바이러스 전염병의 대유행 상황을 유난히 자주 맞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런 유행병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살폈다.
2015년 출간된 이 책에서 저자는 “여행하고 탐험하며 정복하려는 인간의 성향이 바이러스를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산되게 만들었다”며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를 대유행 전염병 바이러스의 시대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이러스’는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101가지 바이러스를 풍부한 설명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사진들로 깊이 있게 다뤘다. 미국의 대표적인 바이러스학자인 저자가 어떻게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작용하며 숙주와 상호작용하고 면역체계에 대응하는지 등을 알려준다. 수두·홍역 등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바이러스부터 최근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사스와 코로나까지 101가지 대표 바이러스를 소개했다.
동물전염병 국제전문가이자 수의바이러스 학자가 펴낸 ‘바이러스 쇼크’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관한 내용을 추가한 개정판을 이달 출간했다. 책은 바이러스의 역사와 탄생 계기부터 최근 자주 출현한 박쥐 바이러스의 정체까지 재앙의 해답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