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대디 김용성 교수]세종대왕을 키운 태종의 자녀교육
by류성 기자
2019.05.12 07:00:00
[홈스쿨대디 김용성 교수] 5월 15일이 스승의 날이 된 사연을 아시나요? 한글을 만들어 민족의 스승이 되신 세종대왕이 이 날 태어나셨지요.
저는 궁금합니다. 어떻게 해서 한 명의 국왕이 이토록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까요? 한글을 창제한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세종대왕은 과학 발전을 촉진해 시계, 도량형, 측우기 등이 등장하게 만들었습니다. 활자와 악보를 정비하는 등 문화발전도 이루었고요. 세종대왕이 부국강병과 문화융성을 동시에 이끌어냈기에, 서양이 르네상스를 이야기하면 우리는 세종대왕의 태평성대 이야기로 댓구를 합니다.
세종대왕이 탁월한 이유를 찾기 위해 가정교육 측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세종 이도는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셋째 아들이면 왕위계승 가능성이 낮은 순번이지요.
그래서 태종은 셋째 아들 충녕군에게 마음껏 책을 읽고 음악을 즐기라고 허용했답니다. 왕자답지 않은 자유로운 교육이 허용되었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교육방식은 이도의 까칠했던 성격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된 듯 합니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이도는 성질이 고약해 형제들 사이에서 무시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답니다. 그런 충녕군에게 태종이 여러 악기를 하사합니다. “너는 세자가 아니어서 따로 할 일이 없으니 편안히 즐기기나 하여라” 하면서요. 충녕군은 거문고와 가야금에 몰입했고 드디어 형들을 가르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실록에 따르면 첫째 양녕대군과 충녕군이 악기를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다시 화합했다고 하네요.
왕실의 법도가 엄중한데도 충녕군이 비교적 자유롭게 자랐고 왕세자가 되기 전에 다양한 학문과 경험을 즐겼던 사실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혹시 그러한 자유로운 교육환경이 훗날 세종대왕이 다방면에서 천재성을 발휘한 계기가 된 것은 아닐까요?
저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추측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은 어떤가요? 자연을 벗삼아 시집을 읽고 여행을 통해 역사를 만나고 다양한 삶의 모습에 관심을 개발하나요? 아니면 답답한 학원 속에 고립된 채 책과 인터넷 강의만 반복해서 보고 있나요?
세종의 가정교육에 있어서 간과되는 중요한 점은 어머니가 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조선왕실 역사에서 왕이 후궁을 두지 않은 예가 드문데, 태종 이방원에게는 단 한 사람의 부인만 있었습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이고 반대파를 숙청하여 조선 창업의 기틀을 다졌고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까지 제압하고 권력을 장악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 그가 한 명의 부인만 두었다는 사실은 다소 의외일 수 있습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태종의 부인 원경왕후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을 도와 정변을 성공시켰고 남편이 권력을 잡은 후에 여자를 탐하는 모습을 보이자 언쟁을 벌였던 여장부입니다. 그 결과 원경왕후의 자식들은 이복형제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세자의 자리를 두고 이복 형제들 그리고 그들의 외가들이 경쟁할 일이 없으니 왕실은 비교적 편안했습니다. 왕위계승 정치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왕자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었을 겁니다.
끊임없는 경쟁과 그로 인한 걱정은 영혼을 갉아먹습니다. 경쟁이 어느 정도까지는 건강한 자극으로 작용하지만 그 수준을 넘으면 파괴적인 효과만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요.
요즘 청소년들은 유치원 시절부터 이미 입시경쟁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불안을 자극하는 학원들의 공포마케팅의 영향으로 한글도 잘 모르는 아이들이 영어유치원으로 내몰립니다. 내신과 학생부종합전형은 전국단위의 입시경쟁을 교실 안으로 끌고들어와 매일매일 학생들의 영혼에 생채기를 냅니다.
저는 세 아들이 세종대왕같은 불세출의 영웅이 되길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라고 과도한 경쟁의 압박으로부터 보호받기를 바랍니다. 제가 만난 홈스쿨러 상당수가 건강한 심리를 보이고 그래서 학업실력이 갈수록 나아지는 것도 이 때문인 듯합니다. 홈스쿨링이 교육의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환경에서는 잠재적 세종대왕이라도 그 싹을 틔우지 못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