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따라 고무줄 뇌물액…삼성 '혼란' 롯데 '참담' SK '무덤덤'
by한광범 기자
2018.04.09 04:00:00
삼성, "승계작업 없다"에 안심…뇌물액 증가는 ''우려''
''부정한 청탁'' 불인정…일단 ''정경유착 공범'' 비껴가
롯데 "묵시적 부정한 청탁 있었다" 재확인 2심 난항예고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지난 6일 박근혜(66) 전 대통령의 1심 판결로 총수의 뇌물공여 문제가 얽혀있는 대기업들의 표정이 엇갈렸다. 삼성은 혼란스러워진 반면 총수가 구속된 롯데는 더욱더 침통한 상황에 직면했다. 총수의 기소를 피했던 SK는 부정한 청탁이 인정돼 불씨를 안고 가게 됐다.
삼성의 경우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에 이어 또다시 경영권 승계 작업에 대한 실체가 인정되지 않아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지만 뇌물 액수가 이 부회장 2심보다 늘어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앞서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미르·K스포츠재단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삼성의 출연·후원금을 경영권 승계 작업의 대가로 보고 제3자 뇌물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제3자 뇌물 혐의는 일반 뇌물죄와 달리 ‘부정한 청탁’의 실체가 인정돼야 한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후 석방돼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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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이 부회장 1심 판결에선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을 인정해 영재센터 후원에 대해 제3자 뇌물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사건을 ‘정경유착’으로 규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 2심 재판부와 ‘비선 실세’ 최순실씨 1심·박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되는 경영권 승계 작업의 실체가 인정하지 않아 이 부회장으로선 ‘정경유착 공범’이라는 꼬리표를 벗었다.
특히 박 전 대통령 1심에선 사초로 평가되던 안종범 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의 업무수첩에 대한 증거능력이 인정됐음에도 재판부는 경영권 승계 현안의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신문보도나 언론, 경제전문가들이 승계 작업에 대해 보도나 언급한 것을 자주 본다. 일반인 입장에선 삼성의 승계 작업이 필요하고 당연히 진행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형사재판에선 더욱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력을 가져야 한다. 검찰 증거만으로는 이를 승계 작업 추진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뇌물 액수가 대폭 늘어나 삼성으로선 향후 대법원 판단까지 안심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검찰과 특검은 삼성전자가 최씨 딸 정유라씨 지원을 위해 코어스포츠에게 건넨 돈과 지원 약속 금액에 대해 일반 뇌물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이 부회장은 자신의 재판 과정에서 승마 지원에 관여하지 않았고, 코어스포츠와 최씨 관여 의혹도 2016년 여름쯤에야 알게 됐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모든 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판단이 엇갈린 것은 직접 뇌물로 인정할 수 있는 지원금의 규모였다.
우선 지금까지의 모든 재판에서 실제 지급되지 않은 약속 금액은 양측의 합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뇌물로 인정되지 않았다. 아울러 삼성전자가 코어스포츠 계좌에 직접 입금한 36억원에 대해선 모든 재판에서 뇌물로 인정됐다.
다만 말 대금과 차량 대금에 대해선 판단이 달랐다. 이 부회장 1심은 말 세 마리의 소유권이 사실상 최씨에게 넘어갔다며 구입대금과 보험료 36억원에 대해 뇌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 2심은 말 소유권이 삼성에게 있다며 금액을 특정할 수 없는 ‘무상 사용 이익’에 대해서만 뇌물을 적용했다. 아울러 차량에 대해서도 무상 사용 이익을 뇌물로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 2심 판결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말 구입대금 전부와 차량 무상 사용 이익을 뇌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뇌물로 제공된 물건은 누가 소유자 명의로 돼 있든 간에 그 물건을 받은 사람이 실질적 사용·처분 권한을 갖고 있다면 뇌물 취득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원이 최순실·박근혜 1심 선고를 근거로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본다면 뇌물액수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
뇌물공여죄는 뇌물수수죄와 달리 금액에 따른 가중처벌 조항은 없지만 뇌물액만큼 횡령 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 때문에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액이 36억원에서 72억원으로 많아지면 횡령액도 그 금액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규정한 징역 5년 이상 사유(횡령액 50억원 이상)에 해당해 징역 3년 이하의 징역·금고에서 가능한 집행유예가 불가능할 수 있다.
신동빈(63) 회장이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고 구속된 롯데는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재차 뇌물공여가 확인되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롯데가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권 재취득’이라는 현안이 있었고 박 전 대통령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신 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K스포츠재단 70억원 추가 출연 요구에 응하면서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2월13일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후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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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신 회장의 경우 롯데 내부 문건으로 이 같은 부정한 청탁이 인정돼 향후 2심에서도 힘겨운 법정 다툼이 예상된다. 재판부는 롯데가 특허권을 잃은 뒤 이를 되찾기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안 전 수석을 집중 공략 대상으로 삼았던 점을 부정한 청탁의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안 전 수석 보고를 받은 박 전 대통령이 2016년 3월14일 신 회장과의 단독 면담을 지시했고, 면담 직후 신 회장이 롯데 내부에 K스포츠재단 지원을 지시한 점이 제3자 뇌물 유죄 판단의 결정적 증거가 됐다. 신 회장으로선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권’이라는 그룹 현안이 명백한 상황에서 향후 진행될 항소심에선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거나 강요된 뇌물이라는 논리로 대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SK의 경우 최태원(57) 회장이 뇌물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정돼 지난해 4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법원은 최씨 1심에 이번 판결에서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묵시적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봤지만 재수사 가능성은 희박해 보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 과정에서 ‘동생 가석방’·‘면세점’ 등 현안을 언급한 사실과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이 K스포츠재단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SK측이 박 전 대통령 지원 요구가 현안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다른 방식의 자금 지원을 역제안했다는 것을 인정하며 양측이 자금 지원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나 양해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SK는 일방적으로 돈을 달라는 요구만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뇌물 요구 상대방은 처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SK의 경우 사회공헌위원회에 상정·의결돼야 돈을 지급할 수 있는데 상정조차 되지 않아 뇌물공여 약속으로도 처벌할 수 없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