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안중근과 블록체인

by최은영 기자
2018.02.08 05:30:00

[김정호 KAIST 연구처장·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우리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암살했다. 이때 안중근 의사는 체포돼 처형되기까지

김정호 KAIST 연구처장.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재판과정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를 당당히 밝혔다. 그 암살의 첫 번째 이유는 “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였다. 그 외에도 “고종황제를 폐위 시킨 죄”, “군대를 해산한 죄”, “교육을 방해한 죄”,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한 죄”,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운 죄”가 포함된 14가지 이유를 밝혔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봐도 모두 국가와 민족의 발전과 존립에 관한 핵심 내용인 동시에 일본 침략의 만행을 꼬집는 내용들이다.

그 중에서 일곱 번째 암살 이유는 “일제가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였다. 1902년 일제는 대한제국 정부와 협의해 일본 제일은행권을 발행, 유통시켰다. 제일은행권의 발행과 유통은 대한제국 화폐 주권을 침해하는 조치였으며, 백동화 유통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대한제국 정부와 상인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다. 더구나 러일 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의 군수 물자 조달을 위해 제일은행권의 발행과 유통은 더욱 확대됐다.

이처럼 일제의 제일은행권 국내 발행과 유통은 일제가 대한제국 화폐 주권을 침탈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안중근 의사는 이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폐 발행을 통해서 일제는 한국의 경제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자본을 수탈했으며, 이를 통해 전쟁을 준비했다. 이처럼 화폐 발행권은 국가의 주권과 관계된다.

최근 가상화폐(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블록체인이란 거래의 모든 당사자가 거래 장부를 나눠 보관함으로써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분산형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이다. 거래에 참여한 모든 당사자가 동일한 내용이 담긴 거래 장부를 나눠 가진다.

블록체인은 전통적인 중앙집권형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해준다. 대규모 인프라와 신용 있는 거래 당사자가 없어도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열린 시스템을 만들어준다.



가상화폐는 실험적이고 분권화된 디지털 화폐로 전 세계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라도 즉시 지불할 수 있다. 가상화폐는 세계 최초의 P2P(개인과 개인) 네트워크 기반의 전자 금융 거래 시스템이며, 동시에 중앙 정부 또는 발행기관의 통제가 없는 분산 구조의 글로벌 전자 화폐다. 이용자들은 전 세계 어디에 있든 다른 이용자와 돈을 빠르고 쉽게 주고받을 수 있다. 수수료는 제로(0)에 가까울 정도로 저렴하다. 또한 현금을 쓸 때처럼 익명성이 보장된다.

블록체인 기술은 디지털 화폐 분야뿐만 아니라 정보의 분산과 익명성이 필요하고 동시에 P2P 교류가 필요한 모든 분야에 혁신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인터넷 상거래, 보험 정보, 의료 정보, 사고 기록, 토지 및 주택 소유 정보, 금융 정보, 신용카드 정보, 세금 정보, 주민등록을 포함한 인적 정보, 법원 기록, 범죄 기록, 입출국 기록, 통신 정보, 인터넷 데이터 정보, 각종 구매 정보, 예약 정보, 상거래 정보 등이다.

모두 전통적으로 이러한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특정 기관과 기업들이 정보 권력을 장악해 온 분야다. 지금까지 이러한 정보의 불균형은 빈부 격차, 정보의 격차, 계층의 차별, 권력의 격차를 만들어 왔다. 블록체인은 이러한 차별을 해체할 혁신적인 기술이 될 수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개발자는 이처럼 중앙집권적인 금융 시스템의 문제를 파악하고 그 대안으로 이를 제시한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화폐 발행권을 대중에게 돌려주는 민주화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과 요즘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은 화폐 발행권과 금융 주권에 관한 상호 투쟁이라는 측면에서 닮았다.

최근 가상화폐(암호화폐)가 규제 강화로 잠시 냉각기를 맞고는 있지만 블록체인과 가상화폐가 불러온 변화의 불씨는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세상을 바꾸는 실마리로, 화폐권력의 이동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