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랜드마크는 나야 나”…호텔 뺨치는 재건축 '럭셔리 경쟁'

by정다슬 기자
2017.09.29 05:30:00

건설사, 초고급 특화설계 열풍
반포주공1, 잠원한신4, 잠실미성
해외서도 최고급 호텔에만 있는
초호화 시설 경쟁적으로 설치
''강남 대장주'' 경쟁에서 밀려날라
비슷한 입지의 재건축 단지들 고민
신반포3차, 시공사에 재설계 요청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2023년 가을. 서울 서초구 반포동 ‘디 에이치 클래스트’(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아파트)에 사는 A씨는 요즘 아파트에서 주말마다 친구들과 파티를 열고 있다. 단지가 6성급 호텔 수준이라는 소식에 친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 번 초대해달라고 요청해서다. 단지 내 스카이브리지에 조성된 게스트하우스에 손님을 초대하고 야외에 있는 수영장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시자고 하면 친구들의 입이 떡 벌어진다. 퇴근 후에는 단지에 있는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감상하거나 인도어테니스코트에서 테니스강습을 받는다. 아이들도 단지에 있는 아이스링크에서 피겨스케이팅을 배우거나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느라 바쁘다. 그나마 숨을 돌리는 주말이 되면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워터파크에, A씨는 수영장에 간다. 물론 이 모든 게 아파트 단지에 있는 커뮤니티 시설에서 이뤄진다.

지난 27일 조합원 총회를 통해 현대건설로 재건축 시공사를 정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주공1단지(1·2·4주구)는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인 반포라는 입지에 한강 조망이 가능한 대단지여서 시장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이번 반포주공 1단지 시공사 수주전이 화제가 된 또 다른 이유는 시공권을 쟁취하기 위한 건설사들이 들고나온 ‘초고급화 특화설계’ 때문이다.

과거 고급 주상복합단지에나 적용되던 커튼월(Curtain Wall) 시공과 단지 내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설치는 이제 기본이 됐다. 올해 말로 끝나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유예를 앞두고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강남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강남 대장주’ 자리를 거머쥐기 위한 초고급화 단지 조성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이미 시공사를 선정한 재개발·재건축 단지 가운데 뒤늦게 특화설계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강남권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서초구 잠원동 한신4지구(신반포8~11차와 신반포 17차와 녹원한신·베니하우스 통합 재건축 단지) 역시 초고급 단지 경쟁에 뛰어들었다. 내달 15일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롯데건설은 스카이브리지를 4개 만들어 입주민이 서울 전경 및 한강 등을 전방위로 조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나섰다. 여기에 GS건설은 랜드마크 2개 동에 걸쳐 스카이브리지를 만들어 캠핑·운동·스파 등을 즐길 수 있는 통합형 스카이 커뮤니티를 만들겠다고 맞섰다.

송파구 잠실동 미성·크로바아파트 수주전에 뛰어든 롯데건설은 123층 롯데월드타워 이미지를 재현한 월드 트리플 타워 3개동을 만들어 잠실 일대의 스카이라인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롯데월드타워와 한강, 올림픽공원을 각각 조망할 수 있는 스카이브리지는 물론, 총 502m 높이의 초대형 문주를 설치해 미성·크로바아파트를 명실상부한 잠실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경쟁사 GS건설은 단지의 랜드마크 동을 잇는 스카이라운지를 만들고 최고급 수영장 인피니티 풀도 조성하겠다고 맞섰다. 스카이브리지와 인피니티 풀은 해외에서도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호텔 등 일부 최고급 호텔에만 들어서 있다. 국내에선 아파트는 물론 호텔에도 이들 모두를 조성한 곳은 없다.



시공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호텔 수준을 넘어선 초고급 단지 시공을 약속하자 비슷한 입지를 가진 다른 강남 재건축 아파트들은 고민에 빠졌다. 향후 이 일대 아파트 시세를 좌우할 랜드마크 경쟁에서 한발 뒤처지게 됐기 때문이다.

단지 내 피트니스센터와 골프연습장, 여름철 물놀이 시설을 도입해 화제가 됐던 반포 자이와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는 지난 10여년간 반포 일대에서 대장주 역할을 했다. 2008~2009년 분양 당시 7억원 대였던 전용면적 59㎡형은 현재 시세가 13억원 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후에 분양된 반포리체나 반포힐스테이트의 같은 면적의 주택형보다 1억원 이상 비싸다.

신반포3차와 경남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최근 시공사인 삼성물산 측에 반포주공 1단지(1·2·4주구)에 밀리지 않을 마스터플랜 설계를 요청했다. 이에 삼성물산 역시 11월 있을 관리처분총회에 맞춰 새로운 단지 설계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신반포3차·경남아파트는 재건축 후 총 2938가구의 매머드급 단지로 거듭나는 데다 한강을 끼고 있어 반포주공 1단지(1·2·4주구)에 뒤지지 않는 최상의 입지 조건을 갖췄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는 한강을 낀 재건축 추진 아파트로 현재로선 유일하게 50층 건축이 가능한 단지인 만큼 잠실 미성·크로바아파트 이상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것이 조합 측 입장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이 단지 재건축 조합은 삼성물산·GS건설·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한 상태이지만, 단지 고급화를 위해 단일 시공사 재선정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단지 초고급화로 인한 사업비 증가다. 시공사들은 일반분양에서 얻을 수 있는 수입을 통해 추가 분담금 없이 상승한 사업비를 보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유선종 건국대 교수는 “주택경기가 하락세로 진입한 데다가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예고하고 있는 만큼 불확실성이 크다”며 “조합은 시공사가 제공하는 장밋빛 전망을 신뢰만 할 것이 아니라 사업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