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기자의 천일藥화]1122개 의약품 판매금지 '탈크 파동' 왜 적법했나

by천승현 기자
2016.02.14 07:00:00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지난 2009년 4월 제약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당시 식약청)가 의약품 1122개 품목에 대해 전격적으로 판매금지 처분을 내리고 회수 조치를 지시한 것이다. 발암물질인 석면이 함유된 ‘탈크’ 원료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단일 사건으로 제약업계 역사상 가장 많은 품목이 행정처분 대상이 됐다.

탈크는 알약이 타정기에서 잘 미끄러져 나올 수 있도록 돕는 활택제 용도로 사용되며 의약품 한 알당 극미량(1~5%) 첨가된다.

당초 화장품 파우더에 불량 탈크 원료가 대량으로 들어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사건이 불거졌는데, 같은 원료가 의약품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불똥이 국내 제약업계 전반으로 튀었다.

식약처가 120개 업체 1122개 품목의 판매금지와 회수를 결정할 때 제약업계의 반발이 거셌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탈크 원료에 대한 석면 기준이 없었다. 제약사들은 정부로부터 적법하게 인증받은 원료를 사용했는데, 유해물질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특히 탈크 원료가 극미량 들어간 완제품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과학적 판단도 없었지만 식약처는 ‘소비자 불안 해소’를 명분으로 대규모 행정처분을 단행했다.

제약업계에서는 식약처의 탈크 의약품 행정처분에 대한 적법성 논란이 제기됐지만 정부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아 이 사건은 그대로 잊혀지는 듯 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2011년 중소업체 헤파가드가 식약처의 부당한 처분으로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었다며 5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정에서 탈크 의약품의 행정처분의 적법성 여부를 다루게 됐다. 헤파가드는 식약처로부터 18개 품목에 대해 회수·판매금지 조치를 받았고 이후 이 회사는 폐업했다.

재판 결과 1심 식약처 승소, 2심 헤파가드 승소로 희비가 엇갈렸지만 최근 대법원에서 식약처의 손을 들어주는 취지로 파기 환송하면서 사실상 식약처의 처분이 적법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사건에서는 인체 유해하다는 근거가 미약한 상황에서 제약사들에 막대한 재산상 손해를 입히는 처분이 정당했냐는 점이 가장 큰 쟁점이다.



헤파가드 측은 “국내외를 통틀어 석면이 경구로 투입되는 경우 인체에 유해하다는 연구결과가 없음에도 식약청은 의약품들이 인체에 해로운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회수·판매금지를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에서는 “석면이 포함된 의약품을 경구로 복용시 향후 나타날 부작용 등에 대해 현재 과학수준으로 명확히 드러난 것은 없다”면서도 “식약처이 국민 보건을 위해 관련 법령에 따라 부여된 적법한 재량권의 범위 내에서 사건 처분을 내린 것으로 판단된다“며 원고의 손배 청구를 기각했다. 식약처의 단독 결정이 아닌 한국독성학회, 발암원학회 등 전문가 자문을 거쳤다는 점도 절차상 적법한 처분이라고 인정받은 배경이다.

재판부는 “위험성이 객관적으로 확인 불가능하고 인체의 건강을 해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정부가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안전한 의약품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전예방적 규제를 하는 것은 관련 법령에 의해 부여된 합리적인 재량권의 범위내에 있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2심에서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2심 재판부는 “탈크 의약품의 판매금지 처분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해 재량권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며 식약처가 헤파가드에 5억3052만원을 배상할 것을 주문했다.

재판부는 베이피파우더와는 달리 탈크 의약품은 인체에 유해한 영향이 발생하는지 여부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베이비파우더의 탈크 함유량은 70~90%에 이르지만 의약품에 함유된 탈크는 1~5%에 불과해 최종 완제품에서는 탈크가 검출되지 않거나 극미량만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다. 식약처가 탈크 의약품에 대한 석면 검출시험을 실시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재판부는 “기존에 석면 또는 탈크 규제에 관한 규정을 전혀 마련하지 않고 있다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자 처분을 했다”면서 “석면을 사용하는 제품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따른 국민의 비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조치”라고 식약처의 처분 과정을 비판했다. 처분 대상이 1122개, 120개 업체에 달할 정도로 처분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의 범위가 크기 때문에 보다 적법한 처분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는 판단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헤파가드를 제외한 나머지 119개 업체도 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2심의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완제의약품에 대한 석면 검출시험을 거치지 않았어도 불량 원료가 사용됐다는 사실만으로 행정처분을 할 수도 있다고 식약처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유해한 의약품으로 인한 공중위생상의 위해는 금전 등으로 회복하기 어려운데다가 그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정부는 그 예방을 위해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크다”며 사건을 다시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결국 제약업계를 혼돈에 빠뜨렸던 탈크 파동은 7년만에 처분이 적절했다는 법리적인 해석이 도출된 셈이다. 정부가 애초부터 기준 규격을 마련하지 않았고, 기업들이 고의적으로 불량 원료를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는 있다. 하지만 의약품이라는 특성상 사전에 위해 요소를 엄격하게 차단해야 한다는 논리가 받아들여져 향후 유사 사건의 행정처분을 결정할 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