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가을은 푸르다...단풍 대신 녹음 품은 가을산행
by강경록 기자
2014.10.14 06:31:00
전남 광양 가을산행
차고 맑은 가을산 속 비단폭포, 어치계곡
붉게 타오른 광양만의 일몰, 구봉산 전망대
| 백운산자연휴양림에 조성된 황톳길. 소나무숲 사이에 황토로 조성된 이 길을 걸으며 명상에 잠기는 사람이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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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가을을 가을답게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숲으로 들어가는 거다. 가을숲엔 가을의 모든 것이라 할 나무가 둘어 있다. 가까운 공원 숲에도, 이웃한 마을 숲에도 나무는 저마다 가을빛을 내뿜고 또 낙엽을 만든다. 그렇기에 가을향기는 어느 숲에서나 짙고 그윽하다. 하지만 가을이 붉게 타오르는 단풍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요란한 단풍 나들이객을 피해 한적한 산길을 걷고 싶은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그 장소는 남도가 좋다. 남도의 가을은 아직 덜 여물었다. 그중 전남 광양의 백운산은 여전히 푸름을 간직하고 있다. 그렇기에 거칠게 남하하는 단풍을 피해 호젓한 산행을 즐기고 싶다면 이곳보다 좋은 곳도 없다. 사람 발길 드문 계곡길을 따라 지저귀는 산새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떨어진 낙엽을 살며시 밟아가며 산책할 수도 있다. 더불어 가을숲 향기 가득한 숲길을 몸으로, 마음으로 천천히 느껴볼 수도 있다. 광양의 가을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했다는 어치계곡의 ‘선녀탕’. 구시폭포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조금만 더 올라가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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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선인 노닐었네, 어치계곡
백운산 자락에는 골골마다 아름다운 곳이 많다. 백운산 4대 계곡이 대표적. 성불계곡, 동곡계곡, 금천계곡, 어치계곡 등이다. 그중 만추의 서정을 만끽하고 싶다면 백운동 끄트머리에 있는 어치계곡이 으뜸이다. 어치계곡은 백운산이 비밀처럼 품고 있는 곳이다. 다른 계곡과 달리 비교적 최근에야 알려졌다. 들여다보는 이의 마음까지 투명하게 맑게 어루만져 주는 짙푸른 물웅덩이(소)와 크고 작은 폭포들이 촘촘히 깔려 있다. 오염원도 없고 찾는 이도 드문, 말 그대로 ‘덜 알려진’ 골짜기인 셈이다.
가는 길도 어렵지 않다. 어치계곡 입구까지는 차로 이동이 가능하다. 백운동 마을에서 어치계곡 입구인 진경산장까지 차로 이동하고, 이후에는 발품을 팔아야 한다. 진경산장에서 억불봉까지 넉넉잡아 2시간 거리. 왕복 4시간이다. 구시폭포까지는 진경산장에서 10분이면 충분하다. 등산에 그다지 취미가 없다고 해도 산이 품은 최고의 경관을 보고 올 수 있으니 10분 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수 있다.
계곡길의 길이는 총 7㎞. 이 길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을 꼽으라면 구시폭포다. 계곡 상류에 있다. 높이 15m로 폭포수가 쏟아지는 바위절벽이 소와 돼지 먹이통인 구유(전라도 사투리로 구시)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단 물소리가 장쾌하다. 그다지 위압적이지도 시끄럽지도 않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극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구시폭포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8분가량 더 올라가면 길옆으로 선녀들이 목욕했다는 선녀탕과 구시소가 구시폭포와는 또 다른 절경을 자아낸다. 작은 폭포의 물줄기가 포말을 일으키며 작은 소를 만들었는데, 흰 수염의 신선이나 날개옷의 선녀가 목욕하던 자리가 어딘가 있다면 꼭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름도 ‘선녀탕’이다.
어치계곡 최상류에 위치한 오로대도 볼 만하다. 오로대는 용소바위 위에 밋밋하게 넓은 마당처럼 생긴 터를 말한다. 여름철 한낮에도 이슬이 맺힐 만큼 시원하다. 바위에 오로대라고 새긴 글씨가 남아 있다. 단오와 한로에 선인들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다고 해 피서철에 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은다. 어치계곡에는 하나하나가 절경인 이 같은 폭포가 모두 5개에 이른다.
어치계곡 주위로 단풍도 제 색을 내기 시작했다. 계곡을 따라가는 길에 낙엽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덕에 길 위의 낙엽은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다. ‘바스락’ 거리며 낙엽을 밟는 기분이 제법 상쾌하다.
▲광양만 붉게 타오르네, 구봉산 일몰
백학동에서 나와 발걸음을 구봉산(해발 473m)으로 향했다. 구봉산은 골약동 황금리 뒷산의 이름. 정확히는 골약동과 광양읍 사곡리에 걸쳐 있고 서쪽 봉화산으로 산줄기가 이어진다. 구봉산은 ‘봉화를 올리는 산’이란 뜻. 조선시대에 ‘건대산’ ‘구봉화산’으로 불리다가 지난해 개명했다.
구봉산 정상부에는 봉화산(산봉화산)과 순천 검단산성, 왜성, 광양만 일대가 바로 내려다보인다. 30~70㎝ 크기의 활석을 이용해 쌓아 올린 봉수대의 원래 구조는 기단부만 있을 뿐 대부분은 유실된 상태. 현재 남아 있는 봉수대의 높이는 120㎝, 남북 길이 800㎝, 동서 길이 700㎝이고 평면 모양은 원형에 가깝다. 봉수대의 주된 기능은 광양지역의 위급한 상황과 돌산도의 봉수, 진례산 봉수에서 전달된 적변의 상황을 순천도호부에 알려주는 것이었다.
구봉산은 오르는 길이 편하다. 정상까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차로 오른다. 산정에 오르면 볼거리가 풍성하다.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인 광양제철소와 이순신대교, 컨테이너 부두, 여천공단이 한눈에 잡힌다.
이 중 광양에서 여수까지 1시간 거리를 10분 안팎으로 단축시킨 이순신대교가 압권이다. 여수 본섬에서 묘도를 거쳐 광양을 연결하는 8.55㎞짜리 현수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견줄 만하다. 2개의 주탑 높이는 270m. 여의도 63빌딩(249m)보다 높다. 주교각 사이의 거리인 경간은 1545m로, 이는 이순신 장군의 출생연도와 같다. 일본의 아카시대교(1991m)와 중국의 시허우먼교(1650m) 등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길다.
세계적으로 유일한 디지털봉수대도 볼만하다. 고전미를 가미한 현대식 메탈아트 작품으로 탄생한 봉수대는 ‘광양’이란 지명을 최초로 칭하게 된 고려 태조 23년(940년)을 반영해 높이를 940㎝로 건립했다. 세계 유일한 철 아트 디지털로, 광양을 상징하는 빛과 철을 가미했으며 매화꽃이 개화하는 꽃의 생명력을 봉화의 이미지에 담았다. 꽃잎은 12지와 12개 읍·면·동을 표현했고 빛의 도시·철의 도시라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특수강과 LED 조명을 이용해 지역적 특성을 살렸다.
일몰과 야경도 화려하다. 순천땅으로 저무는 석양은 멀리 이어진 연봉과 광양만을 태우고 보는 이의 가슴까지 붉게 물들인다. 광양제철소, 컨테이너 부두, 여천공단의 밤풍경은 불야성이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불기둥은 희망을 밝히는 촛불처럼 보인다.
|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려있는 ‘감’을 수확하고 있는 백학동 마을 주민. 백학동 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곳곳에 지천으로 널린 ‘감’을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마사토가 많이 함유된 이 동네 토질은 감의 당도를 끌어 올리고 백운산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남도의 햇살은 곳감 말리는데 최적의 환경을 자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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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가는길=대전~통영 고속도로를 타고 진주갈림목에서 남해 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광양 나들목으로 나가는 방법과 서해안고속도로로 고창갈림목에서 고창~담양 간 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호남고속도로에 올라 순천을 지나 광양까지 가는 방법이 있다.
▶먹거리=옥룡사지 입구에 있는 ‘옴서감서’(061-762-9186)의 대표 메뉴인 ‘피리매운탕’을 추천한다. 식당 앞 개천에서 잡아올린 신선한 민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인 것으로, 시원하고 깔끔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2만 5000원~3만 5000원이다. 광양 시내의 ‘왕창국밥’(061-762-4870)의 돼지국밥은 깔끔하면서도 고소한 것이 특징. 돼지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국밥류는 5000원. 광양읍 서천변에는 불고기 식당들이 모여 있다. 광양불고기는 쇠고기를 구리 석쇠에 올려놓고 참나무숯불에 노릇노릇 구워 먹는데 연하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시내식당(061-763-0360), 금목서(061-761-3300), 대중식당(061-762-5670), 삼대광양불고기(061-762-9250) 등이 유명하다.
▶잠잘곳=광양읍에는 호텔이 거의 없다. 대부분 모텔이다. 관광호텔로는 유일하게 호텔 팔레모(061-761-8700)가 있다. 시설은 낡았으나 깨끗한 편이라 가족여행객이 묵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