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의 부동산 레이더] ‘무리짓기’ 현상과 전세살이

by박원갑 기자
2013.09.09 07:06:15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

부동산시장에서 자주 목격되는 현상은 양떼 현상으로도 불리는 ‘무리 짓기’이다.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모방하면서 하나의 집단적인 경향성을 보일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시장 참여자들은 집단 사고화 경향으로 이어진다. 사실 소수가 한쪽 방향을 예상할 경우에는 시장에서 하나의 집단화된 현상으로 나타나기 힘들다. 그러나 절대 다수가 한쪽 방향을 확신할 경우 집단적인 예상 자체가 시장을 움직이는 큰 힘으로 작용한다. 그러한 현상이 일시적 유행(Fad)을 뛰어넘어 하나의 추세(Trend)로 이어지기도 한다.

요즘 과도한 전세 쏠림은 불확실성 시대에 일종의 무리 짓기 현상이다. 집값 하락에 대한 두려움으로 집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여유층까지 전세시장으로 몰린다. 이들 ‘전세 부자’에게 전세살이는 극단적인 손실 혐오(Loss Aversion)의 발로이다. 말하자면 전세 사는 것은 집값 하락기에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최고의 재테크이자 안전 자산을 구매하는 행위이다.

정부의 이번 8·28 전월세 안정 대책은 전세로 눌러앉는 30~40대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세금을 깎아주고 파격적인 금리를 제공해 집을 사도록 마음을 돌려놓으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번 대책은 이들에게 보내는 “전세 그만 살고 이제 집을 사라“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정부는 비정상적인 전세 쏠림현상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전세시장 안정은 물론, 침체의 늪에 빠진 매매시장 안정도 힘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과도한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분산해서 전세시장과 매매시장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복안이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취득세 영구 인하와 연 1%대의 초저금리 신형 모기지(수익 공유형 모기지와 손익 공유형 모기지)를 도입하는 것이다. 신형 모기지는 연 3% 대의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마이너스 금리나 다름 없어 시장에서 ‘로또 모기지’로 불린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런 파격적인 조치를 내놓은 것은 고육지책인 측면도 없지 않다.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선 취득세 영구 인하 같은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손을 놓고 국회만 바라보고 있을 수만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 수요를 매매시장으로 유도하기 위한 현실적인 유인책이 법률 개정이 필요 없는 신형 모기지 도입이라는 카드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단기적으로 전세시장과 매매시장 분위기를 확 돌려놓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가을 이사철 전세난 파고를 넘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 촉박하다. 신형 모기지는 시행 시기가 가을 이사철이 거의 마무리되는 10월인데다 시범사업 수혜 대상도 3000가구에 불과하다. 때문에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가을 전세난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정책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매수자들이 움직여야 한다. 매매시장의 경우 거래는 약간 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직 관망세다. 집값 하락 기대심리가 여전하고 실물경기도 크게 나아지지 않아 바닥권에서 맴돌고 있는 투자심리가 회복되기에는 이르다. 일부 중소형을 중심으로 거래가 되고 있지만 8·28 대책 효과보다는 전세 매물 씨가 말라 어쩔 수 없이 집을 사는 ‘전세난 회피 수요’가 움직인 측면이 더 크다.

부동산시장에서 무리 짓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미래가 불안하다는 반증이다. 사람들은 앞날이 불안하면 독자적인 소신 행동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모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큰 무리를 짓는 대세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이 미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장의 앞날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주 내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부동산 수요자들의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이 여전히 짙은 안개 속이다. 부동산시장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으려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폐지 같은 정책의 불확실성을 서둘러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머뭇거리는 시장 참여자들로 하여금 합리적인 선택을 유도할 수 있고, 시장 정상화 시기도 앞당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