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때문에 2억 벤츠를 부숴? 누구길래

by조선일보 기자
2007.04.21 12:40:00

[조선일보 제공] 휴대폰 서비스에 불만을 품은 40대 남자가 벤츠 승용차를 몰고 서울 도심의 SK텔레콤 본사 정문을 들이받았다. 〈본지 4월11일자 보도〉

지난 10일 낮 12시50분쯤 서울 을지로 2가 SK텔레콤 본사 현관으로 벤츠 S500이 돌진했다. 건물 입구 회전문은 산산이 부숴졌고, 현관 회전문을 들이받은 시가 2억여 원 상당의 벤츠를 찍은 사진은 순식간에 인터넷에 퍼져나갔다.
 
이날 사건의 주인공은 김모(47·경기도 성남 거주)씨. 사건 발생 직후 현장에서 붙잡힌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50만원을 주고 산 휴대폰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50만원짜리 휴대폰 때문에 2억여 원의 외제차를 부수다니? 차량 수리비만도 1000만원. 과연 그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김씨는 경기도 성남의 한 노인치료 전문 병원에 이사로 재직하며 그곳에서 생활했다. 병원에서 그의 역할은 노인 수발. 선교사인 그는 입원한 노인들을 목욕시키고, 말벗이 되어 줬다. 몇몇 복지관을 돌며 봉사활동도 펼쳤다. 그래서 수입은 없다. 전도에만 신경 쓰는 김씨는 월급도 받지 않는다.

홍성선 원장은 “오랜 지인인 김씨가 우리 병원에서 돈 한 푼 받지 않고 봉사 활동을 해왔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김씨는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선교 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그렇다면 벤츠 승용차는 어떻게 된 것일까? 김씨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김씨는 10년 전 일본으로 건너가 중국을 오가며 무역업으로 상당한 부(富)를 쌓은 자산가다. 이후 뜻하는 바가 있어 일본 교회 소속 선교사가 되었고, 탈북난민돕기와 노인봉사활동 등을 비롯해 선교 활동에 전념해왔다.
 
그간 모은 재산으로 특별히 돈에 구애 받지 않고 선교 생활을 유지해왔으며, SK본사 회전문을 박살낸 벤츠 승용차 역시 친구 명의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김씨 소유였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남대문 경찰서는 “김씨가 돈이 필요하다는 자신의 친구에게 3년 전 1억2000만원을 빌려줬고, 그 친구가 빌린 돈 대신 김씨가 리스(lease)하려는 차를 자신의 명의로 빌려 매달 할부금을 넣어왔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김씨의 차 조수석 앞 유리창에는 ‘불량 SK’라고 적힌 A4용지 4장이 붙어 있었다. 평소 외국을 자주 오가는 김씨는 지난달 12일 인천에서 글로벌 로밍(roaming)이 되는 휴대폰을 구입했으나 처음부터 작동되지 않았다.
 
출국 시간으로 마음이 조급했던 김씨는 바로 중국으로 떠났다. SK텔레콤은 “고객이 시간이 촉박하다고 하는 바람에 제대로 전산 등록이 되지 않아 작동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런 김씨는 귀국 후 수 차례 서비스센터에 “작동이 안 되니 휴대폰을 교환해달라”고 전화를 했고, 지난달 27일에는 직접 본사를 찾아가 고객 상담팀 직원을 만났다. 그러나 상담팀은 “교환은 안 된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SK텔레콤측은 “직접 김씨로부터 휴대폰을 건네 받아 등록이 제대로 되었는지 살펴보려 했지만 김씨는 계속 교환만 주장했다”며 “서비스 불만으로 항의하는 고객은 그 종류도 다양하고, 사안도 각양각색이라 회사가 일일이 처리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측 얘기는 다르다. 김씨의 친구 강모씨는 “휴대폰을 구입한 뒤 휴대폰 이용 요금 고지서도 받았고, 이미 휴대폰에 번호가 등록된 상황에서 오작동의 원인이 전산 등록에 있다면 본사 전산 조작만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며 “해외에서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구입했는데 국내에서조차 사용할 수 없다면 SK텔레콤은 책임지고 제품을 교환해줘야 한다”고 반박했다.

지난 10일 김씨는 다시 한번 SK텔레콤 본사를 찾았고, 경비원이 주차 문제로 차를 빼라고 말하자 순식간에 핸들을 돌려 건물 현관 입구로 돌진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여러 차례 항의 전화도 하고, 직접 본사로 찾아가 따져도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그러던 찰나에 경비원이 회사에서 차를 빼라고 하니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후 SK텔레콤은 직접 회사 사장이 나서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돌리며 ‘서비스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지난 12일 재물손괴 혐의로 구속됐다. 법원은 김씨의 거주지가 불분명해 도주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씨의 딸은 인터넷 신문고 사이트에 글을 올려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중이다. 김씨를 면회한 지인들 역시 “사고 직후 SK텔레콤 본사 현관에서 끌려 내려오는 과정에서 김씨가 목을 다쳐 현재 거동이 불편한 상태”이며 “SK텔레콤에 대해 더욱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