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6.07.18 07:50:06
자식·손자代 대박 노린 ‘100년투기’ 급증
지뢰밭도 평당 2만원
[조선일보 제공] 부동산 투기 바람이 휴전선 철책을 넘었다. 비무장지대(DMZ) 토지를 사고파는 거래가 급증하고 있고, 휴전선 너머 북한군이 관리하는 DMZ 토지까지 매물로 나와 있다.
지뢰는 도로가 나기 좋은 곳에 매설되어있다며 지뢰밭만 사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DMZ에는 지금 자식·손자 대의 ‘대박’을 노리는 ‘100년 투기’가 소리 없이 진행 중이다.
◆지적도만 보고 매매(賣買)
지난 7일 서울 강남의 S영농조합. “지금은 오히려 투자하기 좀 늦었습니다. 저희도 남은 물건이 거의 없어요.” 조합의 한 간부가 말했다. 이 조합은 경기도 연천의 DMZ 땅을 팔고 있다. 평당 3만6000원, 작년 9월부터 올 6월까지 16만평을 팔았다.
“이미 파주 쪽은 오를 대로 올랐고, 연천도 재작년부터 1000~2000원 하던 땅이 이제 평당 최고 5만원까지 뛰었어요. 더 이상 매물도 없고 DMZ영업도 거의 끝나갑니다.” 이 조합은 현재 연천군 갈현리, 고잔하리 쪽 자투리땅 7000여 평 정도만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 땅의 공시지가는 평당 800원 선이다.
땅은 지적도만 보고 산다. 사진 한 장도 없다. DMZ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 팔린다. “작게는 500평(1800만원)을 사는 분도 있지만 보통은 1000~1500평(3600만~5400만원)은 삽니다. 역삼동 사장님은 31살, 30살인 딸들의 명의로 1500평, 1300평씩 구입했고요, 한 중소기업 사장님은 7800여 평을 자녀 세 명의 명의로 등기했습니다.” 서울 강남 뿐 아니라 경기도 파주·일산 등에서 찾아온 사람들이다. 사업가·공무원·대기업임원을 비롯한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개인 혹은 가족·친척 단위로 땅을 사들이고 있다.
◆북측 관리 DMZ도 매물로
같은 날 경기도 연천의 한 부동산. “작년 10월까지는 DMZ물건이 많이 나왔는데 요즘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많아서 그런지 좀 뜸하네요.” K공인중개사는 지적도를 꺼내 들며 말했다.
“벌써 5~6만 평짜리 큰 물건들은 다 팔려나갔고, 요즘엔 이런 게 나왔어요.” K공인중개사는 연천군 도밀리 일대의 20여 개 지번(地番)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한 15만평은 되는데…, 문제는 휴전선 북쪽 북방한계선 근?땅이라는 거예요.”
DMZ의 경우 남쪽이든 북쪽이든 서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어, 북한이 관리하는 DMZ까지 매물로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솔직히 이런 땅은 문제가 있지. 소유권이 인정 안 될 수도 있고. DMZ물건 나온 것 중에는 남측관리 지역이라고 표시돼 있지만 실제로는 휴전선 너머 북쪽에 땅이 있는 경우도 많아요. 일제시대 지적도를 쓰고 있어서 오류가 많거든요.”
DMZ 안쪽 땅의 경우에는 토지대장이 있는 경우가 있고 없는 경우가 있다. 오랫동안 측량이 되지 않아 지적도가 제대로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토지대장이 있으면 정상적으로 거래가 가능하다. 그러나 토지대장이 없을 경우에는 등기를 하지 못해 개인들끼리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공증을 한다. 북측 관리 DMZ 땅도 당연히 등기가 안 된다. 등기가 없는 경우에는 공증을 받더라도 통일된 후 소유권을 인정 받을 수 있을 지 미지수다.
◆지뢰밭만 사는 사람들
강원도 철원의 N부동산. C공인중개사는 “자식들을 위해 땅을 사놓으려면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이나 철책선 안의 지뢰밭을 사야지”라고 말했다. 지뢰는 북한군의 침투가 예상되는 곳에 주로 매설돼 있다.
바꿔 말하면 북측과 연결되는 도로가 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지뢰밭만 사러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민통선 안의 지뢰밭은 현재 국방부 소유이지만, 이건 예전에 아주 싼값에 강제수용이 된 것이라서 통일이 되면 땅을 원래 주인에게 산 값에 되팔 수밖에 없어요. 이 땅에 대한 환매권을 사는 거죠.”
지뢰밭은 평당 1만5000원에서 2만원에 거래된다. C공인중개사가 접경지역의 매물이 나와있는 수첩을 열었다. ‘서울시 ×××, (아들 줄 DMZ 구함)’이라고 적혀있었다. “서울시에 있는 고위 공무원이라던데…, 지난주에 와서 한 번 알아봐 달라더라고요.”
◆민통선은 예전에 투기판으로
민통선 안쪽의 땅(민통선과 남방한계선 사이의 땅을 의미) 값은 이미 예전에 올랐다. 민통선 안쪽은 일반 땅 거래와 똑같다. 지적도와 토지대장도 모두 갖춰져 있다. 그래서 더욱 안전하다. 또 현실적으로 가장 싼 대토(代土)용지다. 대토란 농지가 토지수용이 됐을 경우 이와 똑같은 넓이의 농지를 사면 양도세가 전액 감면되는 제도다.
철원의 한 부동산 업자는 “파주LCD단지의 보상액이 한 2조원 풀렸잖아요. 그 돈이 고스란히 민통선 안쪽 땅값을 올렸다고 보면 돼요. 불쌍한 건 농사꾼들이지…”라고 했다. 2000년대 초 평당 5만원 선이던 철원 민통선 안쪽 농지는 현재 20만~30만원 선까지 치솟았다.
외부인들에 의한 철원군 접경지대의 토지거래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유곡리의 경우 2002년 76건이던 토지거래가 2005년에는 227건으로 늘었다. 이외에 율이리와 생창리, 월하리 등도 같은 기간 2배 이상 토지거래 건수가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