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논설 위원
2024.03.07 05:00:00
조직적 사기 범죄가 창궐하고 있는데도 국회가 수사와 재판을 어렵게 만들어 한국이 사기 범죄의 천국이 됐다는 주장이 현직 판사로부터 제기됐다. 대전고등법원 모성준 판사는 최근 출간한 저서 ‘빨대 사회’에서 “국회가 검찰수사권 박탈로 국가의 전체 수사 권한을 토막내 사기 범죄 조직에 날개를 달아줬다”고 비판했다. 또한 “형사 정의를 부르짖으면서도 뒤로는 사기 범죄 조직에 대한 수사, 처벌을 어렵게 하는 법률을 지속적으로 통과시켰다”면서 “검찰청법 등을 개정해 경찰과 검찰 사이의 수사 흐름마저 끊어버렸다”고 주장했다.
그의 지적은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검경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 등 수사 시스템 변경이 사회와 민생 전반에 초래한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점이 적지 않다. 사기 피해자들의 눈물과 고통을 직접 보고 겪은 현직 법조인이 수사, 재판 과정의 문제점을 낱낱이 지적했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맹성을 촉구하는 죽비와도 같다. 사기는 2022년 국내에서 발생한 전체 범죄(149만 2433건)중 32만 5848건으로 가장 많았다. 피해 총액은 29조 2000억원에 달해 멕시코 마약조직 두목이 30여년간 챙긴 범죄 수익의 두 배에 육박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수사 시스템 변경이 사기 범죄자들을 날뛰게 한 것 못지않게 솜방망이 처벌을 70년 넘게 방치한 형법의 책임 또한 작지 않다. 법학자들이 사회 변화 등에 맞춰 전면 개정이 시급하다고 꼽는 형법의 대표적 허점은 형량이다. 임차인 191명으로부터 보증금 148억원을 가로챈 전세사기범 남모씨가 최근 받은 형량은 고작 징역 15년이었다. 우리 형법이 가장 중한 죄에 1번 가중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최대 15년밖에 선고할 수 없었던 탓이다. 사기건수만큼 형량을 합산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수사의 손발을 묶고 처벌은 솜방망이로 하는 불합리한 법 체계를 그대로 두는 한 국민은 사기 범죄자들의 먹잇감을 면할 수 없다. 총선 후 구성될 22대 국회는 이념과 정파를 떠나 민생을 위협하고 사회를 파괴하는 사기 범죄 근절에 힘을 합쳐야 한다. 수사시스템의 정상화와 형법 개정에 최선을 다해 현실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내길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