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초과저축 100조↑" 집값 상승론 힘 보탠 한은, 진땀[BOK잡담]

by하상렬 기자
2023.08.02 06:00:00

한은 조사국 "팬데믹 이후 가계저축 101조~129조원"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빠르게 유입될 가능성"
''집값 상승론''에 보고서 인용, 주택과열 촉매될까 난색
한은 "주택시장 영향, 미시적 데이터 추후 살펴야"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최근 집값을 띄우는 유튜버 영상에 한국은행 보고서가 등장했다. 지난달 말 한은이 발표한 ‘가계 초과저축 보고서’가 그 주인공이다. 유튜버는 100조원이 넘는 규모의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유입될 수 있다고 해석, ‘한은발(發) 보증서’를 제시했다.

한은은 이 해석이 사뭇 불편하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가계부채에 대해 연착륙을 고민하고 있는 한은 입장에서, 보고서가 가계부채를 더욱 늘리는 ‘촉매’로 작용할까봐서다.

사진=이데일리DB
한은 조사국은 지난달 24일 ‘팬데믹 이후 가계 초과저축 분석 및 평가’ 보고서를 발표, 2020~2022년 우리나라 가계 초과 저축 규모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4.7~6.0%(민간 소비 대비 9.7~12.4%) 수준인 101조~129조원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가계는 초과저축을 유동성이 높은 금융자산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실물·금융상황의 높은 불확실성으로 향후 추이를 관망하는 것”이라며 “초과저축으로 인해 개선된 가계 재무상황은 부정적 소득충격의 영향을 완충하면서 민간소비의 하방리스크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는 한편, 초과저축이 여건 변화에 따라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빠르게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최근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가운데 가계 초과저축이 대출과 함께 주택시장에 재접근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주택가격 상승·가계 디레버리징(부채 감축·deleveraging) 지연 등으로 이어질 경우 금융안정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시장은 뒷부분을 주목했다. 언론 보도 직후 일부 부동산 유튜버들은 보고서의 내용을 다루며 집값이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100조원 이상의 자금이 대출과 함께 주택시장으로 들어 올 수 있다는 ‘한은발 보증서’가 제공된 셈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중에 퍼져 나갔고, 집값 상승론을 뒷받침했다. 실제로 한 한은 관계자는 주변에서 초과저축으로 집값이 오르는 것이냐는 물음이 쇄도해 설명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한다.

한은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금융안정에 있어 부정적인 요인을 주의해야 한다는 당초 집필 취지와 다르게 인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팬데믹 이후 과거와 달리 가계 초과저축이 쌓였던 부분이 있었기에 그것이 어떤 형태로 활용되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등을 살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초과저축이 주택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선 현재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예를 들어 이미 주택을 많이 보유한 사람들의 초과저축이 많다면, 추가 주택 매입 동기가 적을 수도 있다. 한국노동패널 등 가계경제 분석이 담겨있는 자료가 아직 공개되지 않아 향후 자료들을 살펴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조사국 보고서는 발표 전 내부 토론에서 우려가 제기됐다고도 한다. 해석을 달리할 여지가 있고 추세치 설정기간, 활용 변수 등에 따라 데이터가 상이하게 나타난다는 지적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보고서 말미엔 ‘본 보고서는 총량지표를 이용한 분석으로 가계부문별 이질적 행태까지 살펴보기 위해선 추후 미시자료를 통한 추가연구가 필요하다’고 적시돼 있기도 하다.

여론을 의식한듯 지난달 31일 한은 블로그에 올라온 ‘팬데믹 이후 가계 초과저축 분석 및 평가’라는 글에는 주택시장 영향 부분이 비교적 ‘톤다운’됐다. 블로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초과저축이 유동성이 높은 금융자산으로 축적되어 있어 여건변화에 따라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