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헌 아라온호 선장 "1년 중 8개월 남북극 항해…힘들어도 자부심 큽니다"

by임애신 기자
2022.05.12 07:00:00

아라온호 최장수 선장…2014년부터 9년째 근무
남극과 북극 오가며 기후위기 최전선에서 체감
어려움 처한 배 도와주며 '남극의 산타' 찬사
화산폭발 매커니즘 밝힐 기초자료 얻는 성과
"사명감 있는 항해사라면 연구선에 도전하길"

김광헌 아라온호 선장이 지난 9일 광양항 입항한 아라온호 앞에서 극지연구 지원을 위한 안전한 항해를 위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광양항(전남)=이데일리 임애신 기자] “1년 중 8개월 동안 남극과 북극을 항해합니다. 힘든 여정이지만 자부심이 더 큽니다.”

김광헌(60) 아라온호 선장은 최근 전라남도 광양항에서 이데일리를 만나 “쇄빙선은 주야간을 불문하고 선장이나 항해사가 있어야 해서 다른 배에 비해 체력이 더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내 유일의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는 지난 3일 195일간의 남극 항해를 마치고 국내에 입항했다. 광양항에 한 달 정도 머물며 수리와 유지 보수, 유류·선용품 보급, 연구 기자재 선적, 보급품 선적 등을 할 예정이다.

김 선장은 아라온호의 3대 선장이자 2014년부터 9년째 아라온호를 몰고 있는 최장수 선장이다. 1962년생인 그는 한국해양대 항해학과를 졸업한 후 STX마린서비스 소속으로 37년째 항해를 하고 있다. 벌크선, 컨테이너선, 자동차선 등 여러 종류의 배를 몰아 본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다. 그가 아라온호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을 회사의 제안 때문이다. 김 선장은 “2014년에 다른 배 선장을 하고 있었는데 쇄빙선이 회사로 들어왔다”며 “원래 쇄빙선에 관심이 있었던 차에 아라온호 선장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하게 됐다”고 했다.

북극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모습. (사진=극지연구소)
아라온호가 국내에 머무는 것은 1년 중 3개월 남짓이다. 올해는 부산에 있는 가족들이 그를 보기 위해 광양을 찾았다. 김 선장은 “코로나 때문에 집까지 갈 수 없어서 가족들이 인근으로 왔다”며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지만 한국에 있는 기간은 휴가이기 때문에 가족과 생활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가족과 생이별하면서도 아라온호를 운항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올해로 9년째 아라온호 선장으로 임하고 있다”며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어서 계속 근무하게 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흔히 볼 수 없는 풍경도 그 이유 중 하나다. 김 선장은 “남극에 가면 고래·펭귄·바다표범과 거대한 빙산을 보고, 북극에서는 북극곰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봤다”며 “어두워질 무렵이면 북극에 오로라가 있어서 신기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쇄빙선 선장으로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이점 중 하나는 오대양을 다 가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일반 배로는 인도양·대서양·태평양만 갈 수 있고 북극해와 남극해는 갈 수 없다”며 “국내에 있는 선박 중에서 남극과 북극을 운항하는 선박은 쇄빙선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쇄빙선 선장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상선에 적용되는 1급 항해사 자격증과 무선전자통신 자격증은 기본이고, 얼음 구역에서 항해할 수 있는 아이스 내비게이터 자격증, 배를 컴퓨터로 조정하는 다이나믹 포지셔닝(DP) 시스템 자격증이 별도로 필요하다. 그는 “일반 배는 닻을 놓은 후에야 배를 멈출 수 있지만 아라온호는 DP시스템을 통해 바다 한가운데에서 배를 멈출 수 있 수 있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기능이 필요한 이유는 연구 활동 지원을 위해서다. 김 선장은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 수심 4000미터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배가 움직이지 않아야 온전하게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라온호는 2009년 1월 2일부터 남극과 북극 지방에서 연구·보급 및 지원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극지연구소 운항 일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연구원 56명, 선조원 29명 등 총 85명을 태우고 10월부터 4월 중순까지 남극을, 7월 초부터 10월 초까지는 북극을 탐험한다.



아라온호에서 김광헌 선장이 가장 오랜 시간 머물고 가장 편하게 느끼는 공간은 선교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쇄빙선은 RE36 재질의 특수강재를 사용해 일반 철강재의 1.5배의 강도를 가지고 있으며, 영하 40에서도 충격을 견딜 수 있다. 또 3분 이내에 좌·우 각 3.5도의 횡경사를 만들어 얼음에서 탈출할 수 있고, 쇄빙 시 발생하는 선체 부분별 충격량과 경보, 선체 응력, 피로도를 감시하는 선체충격모니터링 감시 장치가 탑재됐다.

김 선장은 “1미터 두께의 얼음은 콘크리트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면서 “쇄빙선이 앞으로 나가는 원리는 배 뒤에 5000킬로와트 엔진 4대의 강한 추진력을 기반으로 얼음 위로 배가 올라가 하중을 준 뒤 얼음을 깨는 것”이라고 원리를 설명했다.

그는 조타수·항해사와 한 몸이 돼 배를 운항한다. 김 선장은 “쇄빙선은 다른 배에 비해 체력이 더 필요하다”며 “주야간을 불문하고 선장이나 항해사가 꼭 있어야 하는 작업이 많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조타수와 항해사는 각각 3명씩 총 6명이 교대 근무를 하지만 선장은 그 혼자다. 김 선장이 틈틈이 운동하는 이유다. 그는 “배 안에 체육시설과 사우나 시설이 있고, 배를 돌면서 도보 운동을 해 체력을 유지한다”고 전했다.

아라온호에서는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웬만한 시설이 다 구비돼 있다. 하루 세끼는 기본이고 과자·빵 등의 간식도 먹을 수 있다. 연구 활동이 있는 때에는 야식도 제공한다. 김 선장은 “배가 운항할 때는 전문자격증이 있는 5명의 조리부가 주방을 지휘한다”며 “음식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개인의 주류 반입은 금지돼 있지만 제한적으로 술도 마실 수 있다. 음주는 일주일에 두 번 식당에서만 마실 수 있으며,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 이하까지만 허용한다. 이는 대략 소주 1병 또는 맥주 335ml 3캔이다. 아라온호에는 병원도 있다.

아울러 극지를 항해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건강상의 문제에 대비해 내과나 외과 전문의사가 탑승해 진료와 치료를 지원한다.

오는 2027년 제2 쇄빙선이 현장에 투입된다. 김광선 아라온호 선장은 후배들에게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연구선에 도전하라”고 추천했다.[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아라온호는 ‘남극의 산타’라는 영예로운 별칭을 가지고 있다. 남극에 조난당한 한국 어선을 예인할뿐더러 고장 난 중국 쇄빙선을 대신해 연구원을 태우러 가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렇게 남을 돕던 김 선장은 최근 가슴이 내려앉는 일을 겪었다. 그는 “남극 항차가 끝나고 국내로 오는 길에 훙가 통가-훙가 하파이 화산 지역에서 작업을 했는데 중간에 배가 부르르 떨리면서 ‘퉁’하는 소리가 났다”며 “이런 경우는 배가 부딪혔거나 좌초된 경우라서 순간 긴장했는데 알고 보니 지진으로 인한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을 감수한 덕분일까. 이번 항해에서 값진 연구 결실을 얻었다. 극지연구소 박숭현 박사 연구팀은 화산 폭발이 일어난 훙가 화산체의 지형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화산체 지형도 확보는 화산 폭발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5년 후에는 극지 연구가 한층 속도를 낼 전망이다. 2027년에 아라온호의 동생이 생기기 때문이다. 김 선장은 “오랜 기간 제2 쇄빙선 이야기가 나왔는데 2027년부터 투입된다고 하니 참 잘 됐다”면서 “한 대 더 있으면 아라온호의 빡빡한 일정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연구 범위도 더 넓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마지막으로 김 선장은 쇄빙선 선장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사명감이 있는 항해사라면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극지에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연구선에 도전하라”고 추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