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최정희 기자
2020.12.25 07:00:00
中 경기 회복에 구리·철광석, 7~9년만에 최고점 찍어
유가는 코로나19에 직격탄..연초 이후 수익률 -20%대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원자재가 호황기를 맞고 있다. 구리, 철광석 등 원자재 최대 소비국인 중국의 경기 회복, 코로나19 백신 접종, 달러 약세 등이 맞물린 결과다. 주요 원자재 가격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을 넘어 고공행진하고 있다. 구리, 철광석 가격은 각각 2013년, 2011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대두 등 농산물 가격까지도 상승했다. 그러나 원유 가격은 이러한 원자재에 비해 상승 속도가 약하다. 국제유가는 올 들어 여전히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런던선물옵션거래소에서 거래된 3개월물 구리 선물 가격은 톤당 800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18일엔 7984.50달러까지 올라 2013년 2월 20일(8039.00달러) 이후 최고점을 기록했다. 올 들어서도 23일 현재 25.9%나 급등했다. 3개월물 아연도 17일 장중 2870.00달러까지 치솟아 작년 4월 15일(2899.50달러) 이후 가장 높았다. 알루미늄도 톤당 2000달러를 넘어 2018년 10월 이후 최고점이다. 아연, 알루미늄도 올 들어 22.3%, 9.8% 상승했다. 니켈(18.8%), 주석(18.8%)도 18%대 상승률을 보였다. 컨설팅 기관 스틸홈에 따르면 중국 철광석(철강 원재료) 수입 가격은 23일 톤당 164.53달러로 2011년 이후 최고점을 찍었다. 이러한 철, 금속 외에 대두도 올 들어서만 33.5% 올랐다. 시카고거래소(CBOT)에서 거래된 대두는 톤당 1266.40달러(23일)에 거래돼 2014년 6월 9일(1469.75달러)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골드만삭스는 2000년대 중국 주도의 붐(Boom)과 1970년대 유가 급등에 견줄 만한 원자재 강세장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세계 최대의 상품거래 회사 중 하나인 타피구라(Trafigura)의 사드 라힘(Saad Rahim)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마켓워치와의 인터뷰에서 “다년간의 상품 강세 시장의 초입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기 회복에 따른 것이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글로벌 경기가 회복 국면 막바지 구간에 있거나 경기 상승 국면 초입에 있다”며 “미국 등 선진국은 전자, 중국 등 이머징 국가는 후자에 위치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 생산 증가율이 반등하는 것은 원자재 수요가 회복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중국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중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코로나19에서 가장 빠르게 벗어나 11월 산업생산이 전년동월보다 7% 증가하는 등 8개월째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 철광석 수요가 증가한 데다 세계 최대 철광석 생산 국가인 호주가 사이클론 등의 영향에 공급이 줄어들 것에 대비, 철광석 상승에 베팅하는 투자금도 늘어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기상 악화 등을 고려, 브라질 등에서 대두 수입을 늘리고 있다. 일각에선 철광석 가격에 대해선 버블 논란이 일어날 정도다. 내년엔 공급이 개선되고 수요 증가가 둔화돼 가격 하락 압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분위기와 다르게 유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다른 원자재와 비교해 상승세가 약한 편이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근월선물은 23일 현재 배럴당 48.12달러로 두 달 연속 상승세를 보였음에도 연초 이후로 따지면 21.2%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브렌트유 근월선물도 22.4%, 두바이유(현물)도 26.3% 하락률을 보였다.
조익재 전문위원은 “유가는 코로나19가 여전히 확산 중이라는 현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자산이기 때문에 주요국들의 이동 수요 악화는 유가에 악재”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구글 이동성 지수에 따르면 미국은 레스토랑, 쇼핑센터, 식료품, 약국, 공원, 직장 등에 대한 이동이 기준선보다 마이너스 상태인 것으로 집계됐다. 애플 이동성 지수 역시 미국은 운전, 도보 등은 기준선보다 우위에 있으나 대중교통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데이터는 공개되지 않았다.
최소한 유가는 내년에 올해보다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현재 수준보다 크게 높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내년 WTI 가격을 45.78달러로 예측했고 브렌트유에 대해서도 48.53달러로 전망했다. 오히려 현 수준보다 소폭 하락한 수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내년 1분기 세계 연료 소비 전망을 일일 100만배럴 가량 줄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과 재택근무 등이 이어지면서 수요가 예상보다 개선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다.
다만 본격적으로 유가가 상승한다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질 것이고, 이는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 완화 정책 변화를 자극할 변수가 되기 때문에 좀 더 주의해서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익재 전문위원은 “유가가 오른다는 것은 금리와 통화 정책에 새로운 변수가 등장할 것임을 뜻한다”며 “물가에 대한 시장의 생각이 연준의 스탠스보다 호키시(hawkish, 경제 성장보다 물가 상승에 민감)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