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WTO 개혁하겠다" 사무총장 출사표 던진 유명희

by김상윤 기자
2020.06.25 01:00:00

수십년간 한우물 판 국내 최고의 통상전문가
수차례 각국과 협상 통해 조정능력·네트워크 키워
한국의 중견국 역할 강조..개도국과 선진국 가교역할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4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차기 사무총장 입후보 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국내 최고의 통상전문가다. 2~3년마다 보직을 옮기는 다른 공무원들과 달리 그는 공직생활 내내 통상분야에서 한우물을 팠다. 통상조직이 통상산업부, 외교통상부, 산업통상자원부로 옮겨다녔지만 그는 붙박이장처럼 통상이란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넓혀 왔다. 다른 나라 통상 관료들이 걸핏하면 간판을 바꿔 단 탓에 부처이름은 헷갈려도 ‘유명희’라는 이름 석자에서 코리아를 떠올리는 이유다.

유 본부장이 164개국이 모인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에 도전한다. 유 본부장은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출범 이래 가장 큰 위기에 처한 세계무역기구(WTO)를 개혁할 적임자는 바로 저”라며 사무총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자유무역을 수호하고 무역분쟁을 중쟁하는 게 주 업부인 WTO는 미중 무역갈등으로 대표되는 각국의 자국보호무역주의에 밀려 1995년 설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대법원 격인 WTO 상소기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으로 위원들을 추가로 인선하지 못해 지난해 말부터 개점휴업에 상태다.

그는 WTO 사무총장 출마가 개인적인 자리 욕심이 아닌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국제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했다. ‘유명희’ 스스로를 앞세워도 됐지만, ‘한국’을 먼저 내세운 셈이다.

그는 “한국은 세계 7위 수출국이자 자유무역질서를 지지해온 통상선도국으로, 지금 위기에 처해있는 WTO 교역질서 및 국제공조체제를 복원·강화하는 것이 우리 경제와 국익 제고에 중요하다”면서 “우리의 높아진 위상과 국격에 걸맞게 국제사회의 요구에 주도적으로 기여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그가 내세우는 한국의 역할은 ‘중견국(middle power)’이다. WTO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 국가의 이해관계에서 치우치지 않고 회원국 간 갈등을 중재하고 공동의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한국은 무역을 통한 성장 경험과 비전, 다수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상대국가들과 신뢰를 쌓아온 역량을 바탕으로, 개도국과 선진국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회원국들 간의 신뢰와 통합이 필요하고, 중견국인 한국은 바로 이 부분에서 주도적인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교역할에 충실한 적임자이기도 하다. 유 본부장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많은 노력과 철저한 준비, 치밀한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스타일이다. 자유무역협정(FTA) 밑그림을 그린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뛰어난 개인기에 의존하는 브라질 축구 스타일 협상가였다면, 그는 조직 시스템을 중시하는 독일 축구 스타일의 협상가다. 그의 능력과 리더십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인정했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한미 FTA 개정 협상 당시 한국측 수석대표를 맡아 얼굴을 맞댄 유 본부장에게 ‘미국 정부에 자리를 만들어줄테니 이직하지 않겠냐’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WTO에서 개인기만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시스템을 중시하는 유 본부장이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가교역할을 충분히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WTO 사무총장에 도전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4년 김철수 상공부(현 산업부) 장관이 도전했지만 레나토 루지에로 이탈리아 통상장관에 밀려 사무차장이 됐다.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도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중도 탈락했다.

유 본부장은 WTO 사무총장 선출을 두고 최소 4명 이상과 경쟁하게 된다. 현재 헤수스 세아데 멕시코 외교부 북미외교 차관,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세계백신면역연합 이사장(나이지리아), 이집트 외교부 출신의 하미드 맘두 변호사, 투토르 울리아노브스키 전 주 제네바 몰도바 대사가 출사표를 던졌고, 유럽엽합(EU) 등에서 추가 후보자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넘어야할 산은 이뿐만이 아니다. WTO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한다. 보호무역주의에 맞서고 있는 유럽연합(EU)을 비롯해 개도국인 아세안, 아프리카의 표도 끌어 모아야 한다. 한국과 수출규제로 무역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이 노골적인 견제 나설 게 불보듯하다.

유 본부장은 “미국이나 중국이나 대립을 하더라도 세계 각국이 공통된 규범을 가지고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는 게 중요하다”면서 “저는 한미FTA 체결 및 개정도 했고, 미국 변호사이기도 하지만, 한중 FTA도 마무리하고 중국에 근무하기도 했기 때문에 주요국간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잘 조정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WTO 상소기구 위원을 역임하는 등 글로벌 통상네트워크가 두터운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맡았다. 김 차장은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유 본부장을 차기 통상수장으로 치켜세울 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유 본부장은 “김 차장께서 정말 정말 적극적으로, 진심으로 응원하면서 좋은 조언도 해주고 있다. 어제도 몇차례 통화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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