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異야기]①"어릴적 화상 아픔, '닥터지' 성공 원동력"

by김정유 기자
2018.01.23 02:00:00

안건영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 인터뷰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닥터지'' 운영, 연간 280억 매출
화상 콤플렉스 극복하고 피부과 전문의, 더마코스메틱 업체 창업
홍콩서 먼저 입소문, 20개국에 ''뷰티 한류'' 전파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어린 시절 화상 흉터로 큰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환자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헤아릴 수 있습니다. 과거 트라우마가 피부과 의사, ‘더마코스메틱’ 기업인으로 키운 셈입니다.”

22일 경기도 분당구 고운세상코스메틱 본사에서 만난 이 회사 안건영(53) 대표는 자사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닥터지’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밝혔다. 너무나 아픈 기억이지만, 피부로 고민하는 환자와 소비자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경험이 회사 성장 원동력이 됐다는 설명이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은 피부과 의사인 안 대표가 2000년 설립한 더마코스메틱 업체다. 더마코스메틱은 피부과학(dermatology)과 화장품(cosmetics)의 합성어로 의사들이 직접 만드는 전문 화장품을 뜻한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은 선크림(자외선차단제)과 필링젤 등을 중심으로 한 닥터지 브랜드를 운영하며 지난해 연매출 280억원을 올렸다.

안 대표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는 ‘화상을 극복한 기업인’이다. 그의 어릴 적 아픔이 ‘피부과학으로 세상을 건강하게 한다’는 고운세상코스메틱의 경영철학으로 자리잡은만큼 회사 입장에선 상징적인 스토리다.

단칸 셋방에 살던 소년은 어느 날 실수로 오른쪽 얼굴에 큰 화상을 입었다. 응급처치에 익숙지 않은 어머니는 민간요법으로 아들의 치료를 대신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소년의 오른쪽 얼굴에는 흉측한 흉터가 자리잡았다. 이 흉터는 소년의 어린 마음을 짓누르는 큰 짐이었다.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한 소년은 외적인 것보다 더 큰 내적인 상처를 입었다. 실험대상을 바라보듯 한 의사들의 냉소적인 눈빛, 의료기기 등 차가운 병원 내 환경이 소년에게 더 큰 아픔으로 남았다. 안 대표의 어릴 적 이야기다.

그는 “어릴 때 성장 환경이 매우 중요한데 당시 화상 흉터는 나에게 큰 심리적 상처로 다가왔다”며 “학창시절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고 하루하루가 너무 살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내적·외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직접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내 피부는 내가 직접 고친다”며 야심차게 의과대학 입시를 준비한 그는 결국 중앙대 의대에 입학하면서 전문의 길을 걸었다. 1998년에는 ‘환자도 고객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국내 첫 프랜차이즈 병원인 고운세상피부과도 개원했다. 안 대표는 병원사업이 안착하자 곧바로 더마코스메틱 분야로 영역을 확장했다.

안 대표는 최근 애청하는 지상파 드라마 ‘흑기사’ 이야기를 건냈다. 그는 “배우 김래원씨 역할이 내 과거 경험과 너무나 흡사해 놀랐다”며 “어릴 때 화상을 딛고 의사로 성장했고 이후 기업가로 변신하는 과정이 비슷했는데 이런 스토리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웃었다. 이어 “피부과 의사로 화장품 사업까지 한 것은 어찌보면 운명인 것 같다”며 “어린 시절 컴플렉스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사업으로 극복해나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의 시작은 소소했다. 병원에서 치료한 후 부가적으로 사용했던 화장품이 시초였다. 안 대표는 “피부과를 운영하다가보니 환자들이 자신의 피부에 어떤 화장품을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주 물어왔다”며 “이런 문의가 많아 자체적으로 병원에서 사용하기 위한 화장품을 개발했는데 운이 좋게도 해외에서 먼저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닥터지의 첫 해외 진출 지역은 홍콩이었다. 홍콩에 거주했던 환자 한 명이 닥터지 화장품을 현지에서 일부 판매하면서 입소문을 탔다. 창업 6년 만인 2006년에는 홍콩 대형 드럭스토어 ‘사사’ 측이 먼저 수출 제의도 해왔다. 안 대표는 “당시는 한류가 확산되지 않았던 때였음에도 선크림과 비비크림 등을 처음으로 홍콩에 수출했고, 진출한지 1년 만에 1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며 “홍콩 사사에서는 지금도 닥터지가 한국 화장품 브랜드 중 판매 1위 자리를 이어간다”고 강조했다.

닥터지는 사사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에도 탄력을 받았다. 2016년에는 미국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매출액도 201억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전문의가 만든 화장품이라는 강점이 크게 작용했다. “우리만큼 화장품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 안 대표의 제품에 대한 자신감은 남다르다. 수출시장도 넓어져 닥터지를 공급하는 지역은 현재 전 세계 20개국 이상으로 늘어났다.

특히 2016년 미국 고급백화점인 노드스트롬으로부터의 입점 요청은 안 대표에게도 큰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는 “미국 노드스트롬은 아무나 입점할 수 있는 백화점이 아닌데 너무나 쉽게 입점할 수 있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노드스트롬 경영진이 내 어릴 적 화상 스토리를 전해들은 후 진정성을 느껴 입점을 추진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정성 없는 브랜드는 가치가 없다는 노드스트롬 측 경영철학과 안 대표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은 미국시장에서의 선전으로 지난해 전년보다 40%가량 늘어난 280억원 매출액을 올리며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대부분 국내 화장품 업체들이 중국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영향으로 실적이 역성장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안 대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제품과 서비스를 결합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론칭한 ‘마이스킨멘토’가 그것이다.

“마이스킨멘토는 소비자 DNA를 분석해 피부 타입을 진단하고 이에 맞는 화장품을 처방, 상담까지 해주는 솔루션이다. 궁극적으로 인공지능(AI)을 통해 피부 타입별 상담을 맞춤형으로 하고 피부과 치료 안내까지 연계해 평생 피부 관리를 해주는 솔루션을 구축할 계획이다. 현재 약 7만명인 마이스킨멘토 이용자는 앞으로 100만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데일리 이서윤 기자]
[이데일리 이서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