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이 '초판본'을 사는 이유는
by김용운 기자
2016.02.15 06:15:00
윤동주 '진달래꽃'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백석 '사슴'…시집 복간본 불티
한자·세로쓰기 소장 욕구 자극해
| 최근 출간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1948년 초판본 복간본(왼쪽)과 1955년 10주기 증보판 복간본. |
|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현재 주문을 더 받기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다. 예약판매를 시작한 이래 1만권이 넘는 주문이 들어왔다. ‘초판본’에 대한 마니아층이 생긴 듯하다.”
시인 백석(1912~1996)의 시집 ‘사슴’ 초판본의 복간본을 준비 중인 1인 출판사 소와다리의 김동근 대표는 최근 밀려드는 책 주문에 정신이 없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소와다리의 ‘초판본 사슴’은 이번 달 초 예약판매 개시 하루 만에 2500부 이상이 판매됐다. 2011년 10월, 스티브 잡스 전기의 하루 판매량이 4000부를 돌파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 출간을 앞둔 백석의 시집 ‘사슴’ 초판 복간본(사진=소와다리) |
|
‘사슴’의 초판본은 1936년 당시 전통 자루매기 양장제본으로 100부만 발간했다. 덕분에 그때에도 구하기 어려웠던 책이었다. 김 대표는 “최대한 초판본의 모습 그대로를 재현하기 위해 종이재질부터 활자까지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11월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의 초판본을 복간해 출간하며 출판계의 주목을 받았다. 저작권이 풀린 작품이기에 시중에는 수십권의 ‘진달래꽃’이 나와 있지만 김 대표는 1925년 중앙서림이 발간한 초판본을 내용과 표기·활자까지 그대로 복원했다. 발간 한달 만에 인터넷서점 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김 대표는 “김소월의 초판
‘진달래꽃’의 복간본을 300권 준비했지만 이미 100배가 넘게 팔렸다”고 덧붙였다.
3만권이 팔린 ‘진달래꽃’에 이어 내놓은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나오자마자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하늘과 바람과…’는 1955년 윤동주 타계 10주기에 나온 증보판을 복간한 시집이다. 여기에 백석의 ‘사슴’은 예약판매만으로 1만권을 돌파했다.
출판계는 이 같은 초판본 열풍을 출판트렌드의 변화조짐으로 보고 있다. 읽기 위해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마치 ‘팬시상품’처럼 소장하기 위해 책을 찾는 독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아 알라딘 마케팅팀장은 “초판본 시집은 한자가 많고 세로쓰기로 돼 있어 한글세대에게 가독성이 떨어지는 편집임에도 구매자의 80.5%가 20~30대다”라며 “책을 구입한 독자들이 인증사진을 찍어 SNS 등에 올리면서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서 이른바 ‘잇 아이템’으로 주목받는 등 이전의 베스트셀러와는 다른 형태로 입소문이 났다”고 말했다.
실제로 ‘진달래꽃’은 ‘경성에서 온 소포’라는 콘셉트로 경성우편국 속달인 봉투에 책과 명동풍경 엽서, 대한제국 시절 우표를 함께 담았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1948년 초판본을 복간한 시집과 함께 윤동주 육필 원고철, 판결 서류와 사진을 함께 실어 단순히 책을 넘어선 일종의 ‘패키지 상품’처럼 구성했다. 김 대표는 “외국에선 표지 디자인이나 삽화 등이 뛰어났던 초판 복간본에 대한 틈새시장이 형성돼 있다”며 “국내에서도 이러한 시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